[박소란의시읽는마음] 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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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안온
지연
당신 목과 어깨는 왼쪽으로 굳어져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신이 맑아 자꾸 콧줄 호스를 뺀다며 간호사는 여름에도 당신 손에 장갑을 끼웠다

난간을 잡았던 손과 발은 죽은 새처럼 오므라져 펴지지 않는다

새는 공중으로 떠오르기 위해 발을 오므린다 끝내 몸을 잃어버리기 위해

먼디 뭐 하러 왔냐
멀지 않다고 말해도 먼 길 떠나는 새처럼
새를 품은 눈사람처럼 창 쪽으로

요양병원을 떠나는 자식에게 손을 흔들어주기 위해
자식이 언제 오나 바라보기 위해 굳어진

눈사람은 자신 있는 그늘을 자늑자늑 녹인다
“새를 품은 눈사람”이란 표현을 곱씹다, 문득 시의 배경이 여름이리란 짐작을 맞닥뜨린다. 여름에 눈사람은 너무 빨리 녹아버릴 텐데 어쩌나, 싱거운 걱정을 해본다. 눈사람이 다 녹고 나면 몸을 잔뜩 웅크린 새 한 마리 남게 될까. 이제 막 공중으로 떠오르려, 먼 곳으로 떠나려 천천히 발을 곰지락거리는 작은 새.

요양병원이며 콧줄이며 “먼디 뭐 하러 왔냐” 하는 물기 어린 말이며 그 말에 애써 태연히 대꾸할 사람의 표정이며, 너무도 선명해서 나는 시 앞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내 안의 ‘당신’이 너무도 선명해서. 오늘 밤 나는 또 슬픈 꿈을 꾸겠구나. 꿈에서 당신의 굳어진 목과 어깨를 펴려 안간힘을 쓰겠구나.

시의 제목을 반복해서 읽는다. 안온, 안온, 무슨 주문인 듯 몇 번을 되뇌고서야 겨우 페이지를 넘긴다. 가장 아픈 순간, 그런 순간에도 당신이 아주 조금은 평온했으면 한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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