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없는 게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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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없는 게 없는
한재범
무인 매장에 갔다 사장 대신 키오스크가 있다 누가 보면 내가 사장이다 누가 들어오면

나를 해명해야 할 거 같아

무인 매장에 서 있다 이 길목에는 무인 매장이 많다 무인 매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고

사장님이 보고 계신다 카메라 너머로 이러면 공간 낭비잖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무인 매장에 서 있다 누가 나를 다녀갔을까 창밖으로 무인 매장을 본다 무덤처럼

눈 감지 않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거기 안 계세요? 소리가 들려 나갔는데

무인 매장에 서 있다 사장님이 퇴직금으로 차린 매장이다 우리는 한날한시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따금 무인 매장에 들른다. 늦은 밤, 무인 매장은 주변 어느 곳보다 환하고, 잠시 들어와 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잠깐이라도 좀 있다 가라고. 혼자 진열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꼭 누군가 같이 있는 기분. “사장님이 보고 계신다 카메라 너머로” 괜스레 의식하게 된다.

가게를 오가는 사람들, 사람들의 표정이며 손짓 발짓이며 꼼꼼히 살피는 그 눈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거기 안 계세요?” 혹시라도 누군가 소리 내어 부르면 재까닥 답하기 위해. “사장 대신 키오스크”가 있는 게 무인 매장이라지만 여전히 사장님은 있다. 퇴직 후에도 사장님의 노동은 계속된다.

과자 몇 봉지를 골랐다.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고 키오스크에 카드를 밀어 넣었다. 계산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바라본 무인 매장은 조금 고단해 보였다. 어떤 “무덤처럼”, 그러나 결코 “눈 감지 않는” 곳. 없는 게 없지만 정작 중요한 무언가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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