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임대차 시장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전세 매물은 눈에 띄게 줄었고, 보증부 월세를 포함한 월세 계약이 사실상 기본 선택지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보증부 월세가 이제 임대차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합뉴스, 게티이미지 단기적인 시장 위축이라기보다, 계약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년 새 매물 15% 감소…“전세 내놓을 집이 없다”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4만4179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5만1897건)보다 14.9% 줄어든 수치다.
거래가 줄었다기보다, 시장에 나오는 매물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이 더 눈에 띈다. 특히 전세 매물 감소 폭이 크다.
서울 강남권에서 중개업을 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기보다는, 아예 전세로 내놓을 집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세 매물이 줄어든 배경으로는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이 꼽힌다. 신규 입주 물량이 제한적인 데다, 기존 주택도 매도와 임대 전환이 동시에 막히면서 매물 회전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전세 사기 여파도 여전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증금 회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전세 계약을 꺼리는 분위기가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전세 빠진 자리, 월세가 채웠다…‘반전세’가 표준으로
전세가 줄어든 자리는 월세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특히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받는 보증부 월세, 이른바 ‘반전세’가 시장의 주된 계약 형태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다 월세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과거처럼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대출을 상환하거나 추가 투자를 하는 방식이 쉽지 않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리 환경 변화와 세금 부담 역시 월세 선호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세입자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반응이 많다.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월세로 이동했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이 늘면서 생활비 압박이 커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개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전세냐 월세냐를 따지기보다, 월세가 얼마냐를 먼저 묻는다”며 “월세는 선택지가 아니라 기본값에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제도는 제자리, 시장은 변화 중…세입자 전략도 달라졌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물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대체할 뚜렷한 정책적 보완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 사기 이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아파트 전세에 수요가 몰리면서, 오히려 전세 희소성이 더 커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계약 방식 변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평가가 많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월세를 전제로 계약 조건을 따지는 환경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달라진 계약 구조 속에서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과거처럼 전세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흐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역시 주거비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세와 월세를 단순 비교하기보다, 총 주거비 부담과 거주 안정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 만료를 앞둔 세입자라면 최소 6개월 전부터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최근 시장에서는 만기에 맞춰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월세라도 장기 거주가 가능하다면, 잦은 이사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린이집 등 용도가 특수한 시설의 경우 임대차 구조 변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만큼, 공공임대 활용이나 지자체와의 협력 같은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서울 임대차 시장은 전세 회복 여부보다, 달라진 계약 구조 속에서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