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비교적 방어력이 강하다고 평가받아온 고소득·자산 보유 계층의 경기 인식이 한 달 만에 급격히 악화됐다.
상위 계층까지 흔들린 지금, 심리가 무너지면 실물은 뒤따른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 연말 고환율 리스크와 글로벌 금융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심리적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계층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득 아닌 자산이 흔들렸다”
3일 한국갤럽 경기 전망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생활수준 상·중상 계층의 경기 전망 순지수(낙관-비관)는 마이너스(-)16으로 집계됐다.
전월 14에서 한 달 만에 30포인트 급락하며 모든 계층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경기 낙관론과 비관론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상위 계층의 낙관론이 더 이상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생활 수준 ‘상’ 계층의 경기 낙관 응답은 31%로, 중(30%), 하(29%) 계층과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반면 비관 응답은 47%로 가장 높아, 중·하 계층보다 약 10%포인트 가량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소득 전망 악화라기보다 자산 가치 변동성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금융자산과 해외자산 비중이 높은 계층일수록 환율 급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그동안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있다고 여겨졌던 고소득·자산 보유 계층의 심리까지 급격히 위축됐다”며 “단순한 소비 둔화를 넘어 구조적 불확실성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환율, 실물보다 먼저 심리를 흔든다…자산시장 불확실성 내수 회복 ‘발목’
연말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점도 심리 악화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다.
금융 전문가들은 환율이 실물경제보다 먼저 기대와 불안을 자극하는 지표라는 점에 주목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당시 평균 수준을 넘어선 구간까지 치솟으면서, 금융자산과 해외자산 비중이 높은 계층일수록 체감 불안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환율은 실제 손실 이전에 심리를 먼저 흔든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 △미·한 금리 격차 △개인 해외투자 확대가 동시에 맞물리며 원화 약세 압력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인식도 심리적 피로를 키우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과 함께 AI 관련 자산에 대한 기대 조정,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경계 심리도 확산되고 있다.
자산시장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상위 계층의 소비·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향후 경기 반등의 출발점은 숫자가 아닌 불확실성을 줄이는 신뢰와 심리 안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게티이미지 소비심리 분석가들은 이 점을 특히 우려한다. 상위 소득층의 심리 악화는 이들의 소비 축소로 직결되고, 이는 내수 회복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저소득층이 이미 체력 한계에 근접한 상황에서, 상위 계층마저 지갑을 닫는다면 경기 반등의 동력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 “심리 안정이 관건…정책 신호 필요해”
정책 측면에서는 환율 안정과 예측 가능성 제고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상위 계층마저 비관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정책 신호가 시장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한 정책 전문가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상위 계층까지 경기 전망을 낮추고 있다는 점은 경제 전반에 ‘한파’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환율 변동성 완화와 함께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책 메시지가 병행돼야 심리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은 분명하다.
지금의 경기 전망 악화는 단일 요인이 아닌 환율, 글로벌 금융 환경, 자산시장 조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특히 환율 수준 그 자체보다 ‘계속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소비와 투자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심리가 무너지면 실물은 뒤따른다. 상위 계층까지 흔들린 지금, 향후 경기 반등의 출발점은 숫자가 아닌 불확실성을 줄이는 신뢰와 심리 안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