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비극과 미학이 극점에 닿아있다. 단순히 괴물의 비주얼이나 어두운 미장센 때문이 아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이 품었던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서 위에서 고전이 아니라 '실존적 체험'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원작에서 괴물은 인간의 오만과 자연의 금기를 넘으려는 계몽주의적 과학의 산물이었다. 델 토로 감독은 이를 만들어낸 빅터(오스카 아이삭)를 상실과 고립에 기반한 창조자로 재해석한다. 어머니의 죽음, 권위적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 성장한 인물로 설정해, 창조 행위가 이성의 결과가 아닌 감정적 결핍을 메우려는 충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새롭게 배치한다. 원작이 과학의 교만을 겨냥했다면, 영화는 정서적 공허가 만든 폭력을 비극의 중심축에 놓는 것이다.
고딕 소설 미학과 비극의 재번역
고딕 소설은 기억되지 못한 존재들을 소환하는 미학이다. 델 토로 감독은 이 정의를 정확히 따른다. 영화 속 괴물(제이콥 엘로디)의 신체는 단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외면과 배척의 역사가 새겨진 기억의 지도처럼 보인다. 봉합된 살점, 재생되는 피부, 온전히 치유되지 않는 자국들은 모두 버려진 존재의 기록이다.
여기서 괴물이 끊임없이 재생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설정은 단순히 강함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다. 살아남는 행위 자체가 형벌이 되는 존재의 고통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죽지 못하고 살아있어야 하는 운명, 이것이 델 토로 감독이 구축한 비극의 형태다.
원작의 괴물은 말하고, 글을 읽고, 철학을 이해한다. 그의 비극은 지적 고독이었다. 델 토로 감독은 지적 능력보다 감정의 결핍과 폭력의 흔적을 부각한다. 폭력을 원작보다 크게 줄인 대신, 외로움과 애정 욕구를 강화한다.
미학적 장치의 또 다른 핵심은 공간이다. 실험실, 연구 공간, 얼음과 바람만이 존재하는 외딴 지대,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차갑고 기하학적인 구조물들은 모두 괴물의 내면을 외화한 공간처럼 보인다. 델 토로 감독은 이를 통해 괴물이 느끼는 고립감, 소외감, 욕망, 분노를 흐르는 공기처럼 포착한다.
여성 캐릭터의 재배치 또한 중요하다. 원작에서 엘리자베스는 거의 수동적인 존재였고, 빅터의 죄의 결과로 희생당한다. 델 토로 감독은 그녀에게 직업, 의지, 정체성을 부여한다. 단순 피해자가 아닌, 빅터의 선택을 목격하고 윤리적 증언자로 서 있다.
비극이 미학으로, 미학이 비극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정점은 폭력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괴물이 느끼는 고립, 거절, 사랑에 대한 갈망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 주안점을 둔다. 셸리의 괴물은 끊임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델 토로 감독은 이 질문을 시각적·정서적 언어로 번역하며, 괴물의 얼굴을 관객이 피할 수 없게 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영화 속 괴물의 얼굴은 그 정의의 전형이다. 단순한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모든 타자의 얼굴을 담은 상징에 가깝다.
원작의 결말은 냉혹하다. 괴물은 빅터의 죽음을 지켜본 뒤 스스로 사라진다. 구원도, 희망도 없다. 그러나 영화는 화해와 용서의 가능성을 남긴다. 괴물도 다시 인간일 수 있다는 현대적 윤리로 뻗어나간다.
원작이 근대인의 오만을 고발했다면, 영화는 현대인의 외면을 고발한다. 괴물이 남긴 얼굴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창조하고, 누구를 버렸는가?' 그 질문을 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델 토로 감독이 도달한 비극과 미학의 극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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