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어겼다" M&A 분쟁 핵심으로 떠오른 '위약벌'

글자 크기
"계약 어겼다" M&A 분쟁 핵심으로 떠오른 '위약벌'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위약벌이다. 위약벌은 계약 위반 시 실제 손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당사자가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전으로, 일종의 벌금적 성격을 가진다. 위약벌은 계약 체결 무산을 막기 위해서나,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6부는 지난달 전자다트 개발 회사인 피닉스다트 창업주 측이 오케스트라PE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상대로 낸 위약벌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위약벌 90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오케스트라PE는 2019년 자사 펀드를 통해 피닉스다트 주식 86.3%를 인수했다. 이후 나머지 약 14% 지분을 가진 창업주와 서로 경영에 어떻게 관여할지를 정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경영진 선임·해임 시 상대방에게 사전 서면 동의를 받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시 피닉스다트는 오케스트라PE 소속 A이사가 대표직을 맡았는데, 경영진들과 갈등을 겪으며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 경영을 두고 배임 논란이 일었고, 출자자(LP)와 창업주 측은 오케스트라PE 측이 경영에 개입해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창업주 측은 1심에 이어 이번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오케스트라PE 측은 위약벌 액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모펀드의 경영 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는 가운데 위약벌 조항의 실효성을 분명히 한 판결이란 점에서 업계 관심이 쏠렸다.


남양유업 창업주 홍원식 전 회장과 한앤컴퍼니(한앤코)의 분쟁에서도 위약벌은 쟁점이었다. 2021년 홍 전 회장 일가가 한앤코와 남양유업 지분 53.08%를 양수도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다. 그러나 석 달 뒤 홍 전 회장 측은 한앤코가 SPA 계약 이행 전에 남양유업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했다면서 돌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특히 홍 전 회장 측은 SPA 해제의 책임이 한앤컴퍼니에게 있다며, 31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위약벌 청구 소송을 냈다. 반면 한앤코는 SPA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맞섰고, 1심과 2심 모두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위약벌 자체가 M&A 계약에선 분쟁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M&A 계약은 일반적인 매매계약과 달리 보통 계약 체결과 거래 종결 사이에 시간적, 절차적 공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공백 사이에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정부기관의 인허가 ▲기업결합신고 등 복잡한 절차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과실로 거래가 무산될 경우 상대방은 이미 상당한 비용을 부담한 상태가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 체결 단계에서 위약벌 조항을 넣는 것이 사실상 필수로 자리 잡았다. 다만 위약벌 규모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많아 조항 설정 단계부터 매수자·매도자 간 견해차가 첨예하게 갈리곤 한다.


IB업계 관계자는 "M&A 거래에는 실사비용, 법률·회계 자문비용, 수개월 간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위약벌 조항은 거래 무산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 장치지만, 금액이 큰 만큼 협상 단계에서 오히려 분쟁을 유발해 계약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거래 성사 가능성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위약벌은 앞으로도 M&A 계약에서 주요 쟁점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중견 사모펀드 임원은 "위약벌의 효력과 범위를 둘러싼 법원의 판단이 점차 축적되면서, 계약서 설계 과정에서 더욱 정교한 조문 작성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