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욕은 앞서 있는데 준비돼 있는 게 없다. "
최근 만난 국내 풍력업계 고위 관계자에게 해상풍력 전망을 묻자 이런 하소연이 돌아왔다.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전력 부문은 2018년 대비 68.8~75.3%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보급에 한층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기준 34GW였던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2030년까지 100GW, 2035년에는 150GW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한 번에 수백 ㎿ 규모의 발전단지를 건설할 수 있는 해상풍력은 이러한 에너지 대전환을 위한 핵심 수단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3년부터 올해까지 실시한 해상풍력 입찰에서 선정된 사업의 예상 발전 규모는 4GW에 달한다. 이 중 현재까지 착공한 곳은 전남 영광에서 건설 중인 낙월해상풍력 한 곳이다.
그동안 해상풍력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돼 왔던 것이 복잡한 인허가 절차였다. 하지만 입찰을 통해 사업자로 선정되고도 첫발을 못 떼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기자는 최근 낙월해상풍력발전 현장을 다녀오고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해상풍력 산업은 하부구조물, 타워, 터빈, 블레이드 등 각 부품을 생산·보관·이동·조립해야 하는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각각의 단계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해상풍력 단지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 금융기관들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이끌어 내는 것은 마지막 관문이다. PF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사업성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해상풍력에 필요한 부품과 기자재를 보관하는 배후항만은 사실상 목포신항 한 곳뿐이다. 목포신항 부두에 여유가 없으면 다른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할 수 없다. 이곳은 현재 건설 중인 낙월해상풍력의 기자재들로 꽉 차 있다고 한다.
해상풍력을 한창 건설할 때는 40~50척의 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풍력발전 설치선(WTIV), 인부들을 실어 나르는 지원선(CTV), 기자재를 운반하는 바지선도 여러 대 있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단 2대의 WTIV가 있는데 모두 낙월해상풍력발전에 투입돼 있다. 낙월해상풍력은 지원선이 모자라 어선까지 빌려야 했다.
배후항만, 설치 선박 등 인프라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부터 배후항만을 추가 조성하고 설치 선박을 새로 건조한다 해도 수년이 걸린다. 과연 이재명 정부 임기 동안 얼마나 해상풍력을 늘릴 수 있을까.
주요 부품인 터빈의 국산화도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주도 입찰 시장을 별도로 개설해 국내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공공이 참여하지 않는 일반 입찰에서까지 국산 터빈의 사용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발전사들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서는 100% 국산 기자재 사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보급해 인공지능(AI)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한다고 한다. 해상풍력을 통해 국내 산업도 육성하고 전기요금도 낮추겠다는 원대한 꿈을 얘기한다. 현실로 눈을 돌리면 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풍력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얘기가 있다. "해상풍력 보급, 발전 단가 인하, 국내 공급망 육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지금은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 확실한 신호를 주어야 한다. "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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