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정부가 싸우면 또 재개발 사업은 지연될 게 뻔하죠. 우리 같은 민초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11일 종묘 앞 세운4구역 기자회견에서 만난 주민은 이처럼 울분을 토해냈다. 20년 넘게 기다린 세운4구역 재개발이 시와 정부 갈등에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재개발만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만 100명이에요. 재산 피해를 보며 더는 기다릴 순 없습니다. "
세운상가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68년 준공된 상가의 천장에서는 콘크리트가 떨어지고 있다. 상가와 같이 세월을 보낸 주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과 싸우고 있다.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하며 세운상가 인근 지역 재개발을 추진한 이후 오세훈 1기, 박원순, 오세훈 2기를 거쳤다. 그런 동안 사업은 지체됐고 토지와 상가 등 재산은 발이 묶여버렸다.
세운4구역을 두고 '개발 사업을 하려는 시'와 '자연 혹은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정부'가 맞붙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건물 최고 높이를 71.9m에서 141.9m로 올리는 안을 두고 골이 깊어지고 있다. 용적률을 올리는 대신 이익을 철거와 녹지축 조성에 쓰겠다고 하자 정부가 사업지 인근 종묘를 보존해야 한다며 막아섰다.
시와 정부 간 갈등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한복판으로 빨려들어갔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맞붙을지도 모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민석 국무총리의 장외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군까지 '종묘 대전'에 참전하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 구체적 대안은 없고 정치 구호가 가득해 협상의 여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숨 쉬던 주민들이 기자회견에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외치는 이유다.
세운4구역 주민 중에선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한계에 직면해 있다. 16년 전 세입자를 다 이주시켜 월세 수입은 끊겼고, 사업 지연에 생활비를 대출받아 연명하는 이도 있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단칼에 거절한 것도 이런 상황 탓이다.
주민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강변한다. 또 서울 한복판 알짜배기인 세운4구역이 철벽에 가로막혀 방치되는 것은 시민에게도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빠르게 결론을 도출하는 게 주민과 시민 모두에게 도움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안이 공론장에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중간에서 타협하든, 한쪽 의견이 지지를 얻든 할 것이다. 하지만 최고 높이가 얼마여야 적당한지, 높이를 낮춘다면 녹지축 조성에 활용할 재원은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내용은 찾기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적인 갈등을 불러온 데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시 역시 이 문제를 풀고 싶어한다. 그런 의지가 있다면 서둘러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명확한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싸울 때 타협이 가능하다. 그래야 오랜 세월을 기다린 주민에겐 보상을, 시민에겐 조화로운 종묘 경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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