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그리고 믿으려는 의지.”
이 한마디는 얼핏 ‘창조’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듯하다. 사실에 기반을 두되,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믿는 마음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은 지난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공개된 영화 ‘굿뉴스’에서 나온 대사 중 하나다. 거짓말을 진실로 만드는 방법을 축약한 말이다.
영화 속 얘기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것을 ‘가짜 뉴스’라고 부른다. 아이러니하다. 뉴스는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일이나 사건, 즉 팩트를 전제로 한다. 다만 가짜라는 단어가 붙으면 진실을 가둬버린다. 사실에 약간의 허구만 적당히 섞으면 진실로 포장한 거짓이 탄생하는 셈이다. 이 거짓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눈과 귀를 홀린다. 이미 막을 수 없는 바이러스처럼 SNS는 물론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등에 널리 퍼진다.
스포츠계도 피해가지 못했다. 아무 근거 없는 ‘카더라’ 같은 루머부터 시작해 딸랑 사진 한 장으로 제기되는 말도 안 되는 의혹들이 차고 넘친다. 조회 수로 수익을 내려는 일명 ‘사이버렉카’들이 활개치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의 뒷얘기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가짜뉴스는 대중들의 이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든다. 최근 한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메이저리거 김혜성이 공항 인터뷰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 논란이다’라는 내용의 쇼츠(짧은 영상)가 올라왔다. 근거는 김혜성의 순간적인 모습이 포착된 사진 한 장이다. 이 영상은 조회 수가 76만회가 넘었다.
얼마 전엔 부상으로 구단과 계약 해지를 한 여자배구 선수에 대한 영상이 올라왔다. 감독과 불화가 있어서 구단에서도 골치가 아팠다는 내용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와 구단으로 향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은 잘못된 내용이 담긴 영상이나 가짜뉴스를 애초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누르면 조회 수가 올라가니까 무시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 입장에서는 짜증이 치솟지만 대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문제는 개별 구단이 일일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온라인에 너무 많은 가짜뉴스가 퍼져 있다. 신고 절차도 까다롭다. 선수 개인이 피해를 봤다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확한 피해 규모를 규격화하기 쉽지 않다.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신고를 어렵게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치권이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사이버렉카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악성 사이버렉카 근절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국내 피해자가 명예훼손 등의 피해 사실을 소명해도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이용자 정보를 받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개정안에는 이용자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포츠계 역시 이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강력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단으로만 어렵다면 연맹과 협회 등이 합심해야 한다. 피해 사례를 모으고 사안에 따라 법적 대응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최근 대한축구협회의 대응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최근 ‘박항서 월드컵지원단장 새 대표팀 감독 취임’, ‘국제축구연맹(FIFA), 대한축구협회 징계’ 등의 허위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서울중앙지법에 정식으로 소장을 접수하고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더 이상 선수들이 흘린 뜨거운 땀방울이 가짜뉴스로 흐려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