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나오고 있다. 뉴스1 주요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단 일주일 만에 1조2천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200선을 돌파하며 ‘빚내서 투자(빚투)’ 열기가 재점화된 데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7일 기준 105조9천137억원으로 집계됐다. 10월 말(104조7천330억원)보다 1조1천807억원 증가한 수치다. 불과 일주일 만에 10월 한 달 증가폭(9천251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2021년 7월(+1조8천637억원) 이후 약 4년 4개월 만의 최대 폭 증가다.
대출 유형별로 보면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1조659억원 늘었고, 일반 신용대출은 1천148억원 증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스피가 조정을 받더라도 여전히 고점 구간에 있어 투자 심리가 식지 않았다”며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개인투자자들의 마이너스통장 이용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 관련 대출 규제 강화로 부족한 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코스피는 이달 초 4,2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가 인공지능(AI) 업종 과대평가 우려로 급락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7조2천638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7조4천433억원을 순매수하며 사실상 이를 전량 받아냈다.
특히 지난 5일 코스피가 장중 6% 넘게 밀려 3,800선까지 떨어졌을 때, 하루 새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6천238억원 급증했다. ‘포모(FOMO·소외 공포)’를 느낀 투자자들이 조정장을 ‘저가 매수’ 기회로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신용대출뿐 아니라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2천165억원으로, 지난 5일에 이어 사흘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빌린 자금을 아직 상환하지 않은 금액이다.
최근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가 급증하자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동안 빚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봤다”며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코스피 5,000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이며 “다만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대출을 강하게 조인 금융당국이 주식투자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단기간 신용투자 급증이 자산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금융권 전문가는 “20~30대를 중심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압박감에 무리한 빚투가 늘고 있다”며 “자산가격 하락 시 심리적·재무적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올해 신용융자 증가분이 자본재·반도체 업종에 집중돼 있어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가 발생하면 해당 업종 가격 하락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 업종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지수 전체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외국인 매수세가 개인 신용투자 종목의 상승세를 견인한 만큼, 환율 변동이나 대외 변수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급락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신용투자 확산에 따른 연쇄 리스크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