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이 ‘금융 유튜버’로 변신하고 있다. 토스의 ‘B주류경제학’, 카카오뱅크의 ‘머니그라운드’ 등 시사교양 토크쇼부터 우리은행 ‘틴 받는 프렌즈’, 하나금융 ‘머니단속반’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각 사가 자체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과거 공식 채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커다란 브랜드 로고와 회사 상징색은 과감하게 빼고, 콘텐츠 자체의 힘으로 승부하면서 유튜브 채널의 존재감을 키워 가는 모습이다.
◆회사가 보이지 않는 ‘시사교양’으로 승부수
토스가 2021년 첫 영상을 올린 ‘머니그라피’는 토스 공식 채널과 분리한다는 과감한 선택으로 금융사 유튜브 채널 중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대표 시리즈인 ‘B주류경제학’은 소비문화의 흐름을 경제 관점에서 읽어내는 토크쇼로, 지난 13일 시즌 3에 돌입했다. 현재 구독자 수는 44만명, 누적 조회 수는 8600만회에 달한다.
보통의 경제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B주류경제학의 매력은 주제 선정에서 나온다. 소비문화를 앞세운 만큼 ‘경제 유튜브’에 친숙하지 않은 시청자에게도 심리적 장벽이 낮고, 해당 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끌어들일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게스트로 등장해 인사이트를 제공하면, 진행자 이재용 회계사는 해당 주제를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의 감상을 전달함과 동시에 재무 전문가로서 산업 동향을 분석해 주는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머니그라피는 언뜻 봐서는 토스에서 운영하는 채널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브랜드 색채가 후방으로 빠져 있다. B주류경제학의 키 컬러는 오렌지와 블랙으로, 어느 면에서도 토스가 연상되지 않는다. 최근 머니그라피에서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들은 주제 면에서도 토스와 더 멀어졌다. ‘머니 코드’는 음악산업에 집중하고, ‘토킹헤즈’는 한국의 수도권 편중, 입시제도 등 폭넓은 시사 주제들을 다룬다. 기업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데 따르는 이점도 있다. 금융사는 필연적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이해상충에 대한 의심을 받는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 자체 유튜브 채널이 개인 유튜버에 비하면 조회 수가 높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내놓는 콘텐츠에는 ‘순수하지 않은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불신”이라고 말했다. 토스는 ‘토킹헤즈’에서 얼굴인식 기술에 대해 다루며 자사 얼굴인식 서비스인 페이스페이를 직접 언급했다. 다른 기업 유튜브였다면 댓글창이 청문회를 방불케 했겠지만, 기업 이미지가 희석된 채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였다.
머니그라피가 쌓은 팬층과 인지도를 기반으로 토스는 지난해 10월 ‘B주류경제학’을 책으로 출간했고, 지난해 12월에는 머니그라피를 콘셉트로 서울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이 같은 브랜디드 콘텐츠에 대한 여러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0월부터 스포츠의 경제를 다룬 토크쇼 ‘머니그라운드’를 시작했다. 기존 팬덤이 튼튼한 스포츠라는 주제로 경제 이야기를 풀어내며 아직 시작한 지 한 달가량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영상당 40만∼50만의 준수한 조회 수를 얻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성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카카오뱅크를 연상시키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토크쇼를 전면에 내세웠다.
케이뱅크는 ‘JOB(잡)수다’라는 이름으로 직원 초대석 형식의 토크쇼를 지난 8월부터 시작했다. 앞선 시사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회사 내 각 직군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케이뱅크의 존재가 도드라지지만, 자사 홍보보다는 각 직군의 역할 등 취업준비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콘텐츠를 꾸렸다.
우리은행의 ‘원모어타임’은 20·30대 직원들이 직접 찍은 브이로그로 금융생활과 직장,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며 고객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EBS와 협업한 ‘틴 받는 프렌즈’는 10대들이 주목할 만한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해 예능 형식으로 용돈 관리의 중요성을 다뤘다. 해당 시리즈도 매 편당 25만∼29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흥행했다.
하나금융의 ‘머니단속반’ 또한 보이그룹 에이비식스의 이대휘를 진행자로 앞세워 10·20대의 과소비를 단속한다는 콘셉트로 경제관리의 중요성을 유쾌하게 다뤘다.
◆동영상 사이트, 금융 정보 창구로
한편 금융사의 특성을 전면에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금융권 최초로 구독자 270만명을 돌파한 삼성증권 유튜브는 ‘귀로 듣는 종목 리포트’를 콘셉트로 한 라디오 형식의 ‘mPOP 캐스트’, 매일 뉴욕증시 뉴스를 간추린 ‘모닝 브리핑’ 등을 전개하고 있다.
CJ메조미디어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소비자들은 금융 정보를 얻기 위해 은행·증권사 모바일 앱(45%), 토스·뱅크샐러드 등 금융 전문 앱(38%)만큼이나 동영상 채널(40%)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영상 채널은 젊은 세대만 주목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40대(40%)나 50대(38%)도 대부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20대(40%), 30대(45%)의 이용률도 높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금융 정보를 얻는다고 한 응답은 24%로 비교적 적었지만, 20대의 경우 그 비율이 40%까지 올라간다. 동영상 채널이자 SNS의 특징도 갖춘 유튜브는 전 세대를 아울러 놓쳐선 안 될 소통 창구인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한 광고 콘텐츠로의 유입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다. 같은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주로 유튜브(53%)를 통해 금융광고를 접하며, 배너 광고(43%)를 통해 노출되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41%는 최근 3개월 내 디지털 광고를 보고 금융상품에 가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금융사에게는 인지도와 신뢰도가 곧 서비스의 성패를 가른다. 상품보다 경험, 스토리텔링에 반응하는 디지털 세대가 늘어날수록 브랜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녹인 브랜디드 콘텐츠의 중요성은 높아질 전망이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