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로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원칙은 이미 정리됐다. 그러나 판결이 곧바로 즉각적인 임금 인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은 판결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늘어나는 인건비를 어떤 구조로 흡수하느냐다. 사측이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로 단계적 반영을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총액 관리 없는 통상임금 반영은 인건비 구조를 단기간에 왜곡할 수 있다. “법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경제는 속도를 묻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해외 사례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 여러 주의 대중교통 기관들은 임금 소송이나 판결 이후 즉각적인 소급 인상을 선택하기보다, 기본급 조정·수당 재편·근무시간 기준 통일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비용 충격을 흡수해 왔다. 독일 역시 공공부문 임금 조정 과정에서 판결을 명분으로 한 일괄 인상보다는, 재정 여력과 생산성 개선을 연동한 단계적 반영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법적 권리를 인정하되, 재정과 요금 체계가 동시에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경고를 곱씹을 대목이다.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체계 개편 없이 통상임금이 소급 적용될 경우, 서울 시내버스 인건비는 구조적으로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준공영제 보조금 확대 → 서울시 재정 부담 증가 → 세금 또는 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파업은 노사 간 이익 충돌을 넘어, 비용을 공공으로 전가하는 구조에 가깝다. 결국 시민은 이용자로서, 납세자로서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보이지 않는 비용이 가장 비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인다.
서울 시내버스는 민간 사업이지만, 수익과 비용의 상당 부분을 공공이 보전하는 준공영제 체제에 놓여 있다. 이런 구조에서의 파업은 일반 제조업 파업과 성격이 다르다. 협상 결과가 곧바로 지방재정, 물가, 공공요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사 모두에게 시장 논리 이상의 책임이 요구된다. “권리가 커질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상식은 공공 영역에서 더욱 엄격해야 한다.
서울시의 대응도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 통상임금 판결 이후 유사한 갈등은 충분히 예견됐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파업 국면마다 비상수송대책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비용을 뒤로 미루는 대응이다. 해외 주요 도시들이 임금 분쟁 이후 곧바로 임금체계 개편 로드맵과 재정 분담 원칙을 제시한 것과 대비된다. “위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위기가 제도를 바꾼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경제는 예측 가능성 위에서 작동한다. 공공 교통 인건비가 파업과 판결, 정치적 압박에 따라 급변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시장과 시민에게 돌아간다. 통상임금은 법의 문제이지만, 그 이행 방식은 경제의 문제다. 원칙은 지키되, 속도와 방식은 관리해야 한다는 상식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설계다. 누가 더 양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비용을 어떻게 분산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출퇴근길을 멈춰 세우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경제적 정당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제도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 위에 서야 한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내버스 파업이 시작된 13일 시청 재난안전상황실을 찾아 비상수송대책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아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