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연초부터 거칠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성적표는 연말 중간선거를 통한 국내 유권자들의 표심, 노벨평화상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판단을 통해 각각 직간접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 11월 중간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여부를 결정짓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심지어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과 당내 분열에 피로감을 느낀 일부 의원들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는 사례가 잇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염원해온 노벨평화상 수상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는 지난해 스스로를 세계의 ‘평화중재자’로 묘사해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이 불발되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논란 속에 평화상을 신설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작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행동의 간극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가 새해부터 내놓은 각종 메시지가 연말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관심이 쏠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5년 12월 5일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평화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 연합 ◆불만 누적… 내부 분열 괜찮을까 8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에서 공화당은 각각 53석, 218석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벌써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중간선거에서 승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고물가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민심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워싱턴 문화예술 공연장 트럼프·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연방 하원 공화당 의원 연례 정책회의에서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며 “만약 이기지 못하면 그들(민주당)은 저를 탄핵할 이유를 찾을 것”이라고 결집을 호소했다.
물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미국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날드 메뉴의 평균 가격은 2019∼2024년 사이 40%나 올랐다. 메뉴별로 살피면 빅맥 평균가는 이 기간 4.39달러(약 6360원)에서 5.29달러(약 7660원)로 상승했다. 10조각 맥너겟 세트 가격은 7.19달러에서 9.19달러로 뛰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심화한 인플레이션 흐름에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한 관세 전쟁 여파가 겹치면서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이미 미국 국민의 불만은 지난해 치러진 뉴욕시장,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표심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양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던 뉴저지 주지사 선거의 경우 민주당이 높은 전기요금을 낮추겠다고 공약하는 등 실생활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승리를 가져갔다. 국민뿐만이 아니다. 중앙정치에 실망한 공화당 의원들마저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저리 테일러 그린, 댄 뉴하우스 등 공화당 소속 연방 상·하원의원 30여명이 중간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일부 의원들은 의원직을 포기하고 주지사직에 도전할 방침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총 225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의회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하자 한계를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설상가상 마두로 대통령 축출 작전이 장기적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세력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분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4일 미국 성인 1004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3.5%포인트)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 중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통제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7%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질문에 ‘반대한다’와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1%, 32%로 집계됐다. 또 베네수엘라의 미래 지도부를 누가 결정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는 공화당 지지자의 91%가 ‘베네수엘라 국민’이라고 응답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베네수엘라 개입에 대한 지지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마가 세력은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해외 국가에 대한 군사 개입을 반대한다. 아직은 뚜렷한 분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지만 사태가 길어지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익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이번 일을 계기로 한 이탈 현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새해 노벨상 포기했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연설에서 평화중재자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는 갈등을 없애기보다 재배치하는 일종의 ‘전략적 자산’으로 보인다. 이런 정치 방식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특유의 강경한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새해 전야 파티 참석을 앞두고 ‘새해 결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평화”라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와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냐는 질문을 포함한 기자들의 신년 메시지 요청에는 답변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그러나 새해가 밝은 지 불과 사흘째 되는 날인 3일 트럼프 대통령은 ‘확고한 결의’라고 명명한 베네수엘라 기습 작전을 단행했다. 석유 개발 이권, 서반구 장악력 강화, 중간선거 전 포석 등 목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분명한 건 평화를 강조한 언어와 군사적 행동이 짧은 시차를 두고 교차했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평화를, 행동으로는 힘을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언행 불일치’, ‘모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낯설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태국과 캄보디아 간 전쟁을 중재하면서도 “내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며 협상 주도권을 확실히 하는 등 힘의 논리를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방식이 거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마감일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1월31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취임) 10개월 만에 8개의 전쟁을 종식했다”면서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노골적으로 종용해왔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으면 노르웨이를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는 허위 주장을 담은 게시물이 확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국 가디언은 실제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르웨이가 트럼프 대통령의 수상 무산 시 발생할 외교적 파장에 대비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기대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 협상과 가자지구 휴전을 안정적으로 이끈다면 명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 축출 작전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꿈은 멀어져 가는 모양새다. 평론가와 언론인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에게 이끌려 이동하는 모습. 백악관 엑스 리트윗 캡처 가디언의 국제 담당 칼럼니스트 사이먼 티스달은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상에 집착하는 사람치고는 갈등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그의 무분별한 폭력 사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직격했다. 티스달은 이어 “평화가 쉽게 실현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는 중재자인 척하면서 전쟁을 감행하고 있다”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사상 최다 공습을 이어갔다”고 강조했다.
미국 매체 데일리비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새해 결심을 평화라고 선언한 지 불과 48시간 만에 도발 없는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며 “이 기습 공격은 그가 오랫동안 밝혀온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집착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더내셔널은 “(이번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의 꿈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며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항상 가능성이 작았지만 이제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선영 기자 sunnyday70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