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는 친절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매끄러운 서사 대신 거칠고 투박한 입자로 스크린을 채우며 현대 일본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 표면적으로는 야쿠자 조직을 배신한 세 남자의 도주극 형식을 띠지만, 이면에 숨 막히는 집단주의를 향한 서늘한 비판 의식이 웅크리고 있다.
배경은 도쿄 신주쿠의 가부키초. 주인공 다쿠야(기타무라 다쿠미)와 마모루(하야시 유타)는 이곳에서 범죄 조직의 하수인으로 살아간다. 주된 업무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속여 호적(戶籍)을 매매하는 일이다.
호적 매매라는 소재는 상징적이다. 일본 사회에서 호적은 단순한 행정 서류를 넘어 개인의 존재 증명이자 사회적 신분 그 자체다. 남의 신분으로 위장하거나 타인의 호적을 사고파는 행위는, 집단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고유한 자아를 상실한 현대 일본 청춘들의 초상과 맞닿아 있다. 나가타 고토 감독은 이 범죄를 서사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껍데기뿐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공허함을 시각화한다.
파국은 다쿠야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며 조직의 금기를 깨면서 시작된다. 형님 같은 존재인 가지타니(아야노 고)를 끌어들여 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는 체제에 대한 거창한 반역이나 공격이 아니다. 단지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숨 쉴 구멍을 찾으려는 소박한 갈망일 뿐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 개인적 일탈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가타 감독은 이처럼 개인이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는 행위 자체가 '죄'로 규정되는 사회, 즉 질식할 듯한 위계질서로부터의 탈출이 곧 파멸로 직결되는 구조적 모순을 정조준한다. 조직을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닌, '공기(空氣·분위기)' 파악을 강요하는 일본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낸다. 특히 극 중 간부들의 강압적 명령은 관료제와 블랙 기업이 개인에게 가하는 무언의 압박과 겹치며 시의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불친절한 전개는 단점이 아닌,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논리적 장치로 기능한다. 나가타 감독은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감정선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인과관계가 실종된 부조리한 세계를 형상화한다. 관객에게 친절한 설명을 건네는 대신, 이유 없이 닥쳐오는 폭력과 그에 맞서는 인물들의 본능적인 반응을 날것 그대로 전시한다. '왜'라는 질문조차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스크린에 구현하려는 연출적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미학적 성취도 돋보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주연 배우 세 명(기타무라 다쿠미, 하야시 유타, 아야노 고)이 이례적으로 '올해의 배우상'을 공동 수상했을 만큼 연기 앙상블이 압도적이다. 핸드헬드(Hand-held) 기법으로 포착한 롱테이크 도주 시퀀스도 대사가 사라진 자리를 거친 숨소리와 발소리로 채우며 관객에게 물리적 체험을 선사한다.
제목이 던지는 화두는 묵직하다. 시스템에 순응해 무채색 부품으로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파멸할지언정 고유한 색을 찾기 위해 저항할 것인가. 영화는 상처투성이가 된 청춘의 얼굴을 통해 '진짜 어리석은 자'의 정의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다소 건조한 전개가 진입장벽일 수 있으나, 그 삭막한 풍경 너머에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야성(野性)과 자유 의지에 대한 갈망이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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