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받은 군인… 트럼프, 마셜 원수에 찬사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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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받은 군인… 트럼프, 마셜 원수에 찬사 바쳐
2차대전 당시 미군 승리 이끌어내 “‘힘을 통한 평화’ 유산으로 남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일하며 미군의 승리를 이끌어낸 조지 마셜(1880∼1959) 장군을 기렸다. 마셜은 미 육군 역사상 원수(★★★★★)까지 진급한 5명의 장성들 중 1명이다. 아울러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루 전인 2025년 12월 31일 ‘마셜 장군 탄생일에 즈음한 대통령 메시지’를 발표했다. 1880년 12월 31일 펜실베이니아주(州)에서 태어난 마셜은 이날로 145번째 생일을 맞았다.

조지 마셜(1880∼1959) 미 육군 원수. 1953년 직업군인으로는 처음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트럼프는 마셜을 향해 “대담한 리더십, 전략적 탁월함, 그리고 끊임없는 자유에 대한 헌신으로 2차대전 기간 동안 악(惡)의 세력, 폭정, 그리고 파멸로부터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구했다”고 찬사를 바쳤다. 이어 “오늘날 우리 행정부는 ‘힘을 통한 평화’라는 외교 정책의 복원과 군대 재건 등 마셜 장군의 놀라운 유산을 자랑스럽게 계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세계 평화와 번영이라는 마셜 장군의 비전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정의로운 도덕적 명확성과 흔들림 없는 결단으로 세계를 계속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관 장교로서 프랑스 전선에서 싸운 마셜은 일찌감치 군수와 인사 업무에 두각을 나타냈다. 1939년 육군 소장이던 그는 2차대전 발발 직후 대장으로 2계단 진급하며 참모총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1941년 12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할 때까지 미 육군의 전쟁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2차대전 내내 마셜은 전쟁터가 아닌 미 수도 워싱턴의 육군본부를 지키며 개전 초반 20만명에 불과했던 미 육군이 800만명의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휘했다. 유럽 및 태평양 전선으로 각각 보낼 병력 규모와 장비 종류를 정하고 세계 곳곳의 미군 부대에 보급할 군수 물자를 챙기는 것은 모두 마셜의 몫이었다. 그는 유능한 지휘관을 진급시켜 요직에 기용하는 한편 무능한 장교들은 가차없이 해임했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셜에게 “당신이 워싱턴을 비우면 나는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미국 제33대 대통령(1945∼1953년 재임) 해리 트루먼(왼쪽)과 조지 마셜 원수. 트루먼은 마셜을 무척 신뢰해 군인 신분의 그를 국무부 및 국방부 장관에 기용했다. SNS 캡처 마셜은 2차대전 말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더글러스 맥아더 등과 더불어 원수로 진급했다. 원수는 종신직인 만큼 그때부터 마셜은 죽는 날까지 군인 신분을 유지했다. 전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에서 국무부 장관(1947년 1월∼1949년 1월)과 국방부 장관(1950년 9월∼1951년 9월)으로 일하던 시기엔 잠시 현역 장성에서 벗어나 민간인으로 활동했으나, 퇴직과 동시에 군인으로 되돌아갔다.

국무장관 시절 2차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의 재건과 부흥을 미국이 돕는 내용의 ‘마셜 플랜’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 업적으로 195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직업군인이 이 상을 수상한 건 마셜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6·25 전쟁이 터지고 미군이 개입하며 국방장관을 맡게 된 마셜은 2차대전 종전 후 해이해진 미군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그는 미군의 전투 능력을 2차대전 때만큼 끌어올리는 데에도 매진했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의 원칙을 깨고 대통령에게 항명한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사령관에서 전격 해임하는 강수를 둔 인물도 바로 마셜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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