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23~2024 V리그에서 우리카드의 기세는 대단했다. 2022~2023시즌을 끝으로 KB손해보험으로 FA 이적한 나경복의 공백(이적 후 바로 군입대)으로 전력에 빈자리가 생기자 당시 사령탑이었던 신영철 감독(現 OK저축은행 감독)은 대대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재편한다. 주전 세터였던 황승빈(現 현대캐피탈)을 KB손해보험으로 보내고 아웃사이드 히터 한성정을 품었다. OK저축은행과는 맞트레이드를 통해 송희채를 보내고 송명근(現 삼성화재)을 데려와 공격진에 무게를 더했다. 시즌 전만 해도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영철 감독의 대대적인 팀 리빌딩이 성공하며 선두권을 유지했다. 고졸 2년차 신인 세터 한태준은 단숨에 리그 최고 수준의 세터로 떠올랐고, 김지한은 나경복의 뒤를 잇는 토종 에이스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시즌 도중 외국인 선수 마테이 콕이 훈련 과정에서 발목 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을 당했지만, 잇세이 오타케(일본), 송명근이 그 빈 자리를 훌륭히 메우며 반등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규리그 2경기를 남겨놓고 승점에 상관없이 승리만 거두면 자력으로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현대캐피탈에 1-3으로 패한 뒤 시즌 최종전에서 삼성화재에 풀세트 접전, 5세트 듀스 끝에 패하며 대한항공에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긴 했으나 레오(現 현대캐피탈)를 앞세운 OK저축은행을 만나 2전 전패로 시즌이 끝났다.
비록 결말은 다소 아쉬웠지만, 신영철 감독의 리빌딩 능력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신영철 감독은 하위권이었던 우리카드를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우리카드는 6시즌을 팀을 이끌었던 신영철 감독과 결별했다.
우리카드의 선택은 마우리시오 파에스(브라질) 감독이었다. 구단의 첫 외국인 사령탑이었다. 2023~2024시즌을 마치고 V리그 남자부에는 외국인 감독 열풍이 불었다. 기존의 대한항공(토미 틸리카이넨), OK저축은행(오기노 마사지) 외에 현대캐피탈이 필립 블랑(프랑스), KB손해보험이 미겔 리베라 감독을 데려온 데 이어 우리카드도 그 열풍에 동참하며 파에스 감독을 선택했다. 일본의 파나소닉에서 사령탑을 맡으며 아시아 배구에도 익숙한 인물이라 기대를 모았다. 우승권 팀을 물려받았지만, 파에스 감독의 V리그 도전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데뷔 시즌인 2024~2025시즌엔 외국인 선수 아히(네덜란드)가 1라운드 이후 부상으로 낙마하는 악재도 있었다. 대체 외인으로 데려온 두산 니콜리치는 기량도 기대 이하였던 데다 복근 부상을 당해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영철 감독 체제에서 리그 정상급 선수로 도약했던 한태준, 김지한의 경기력에 널뛰기를 반복했다. 결국 18승18패, 5할 승률에 머무르며 봄 배구에 탈락했다.
2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인 2025~2026시즌. 파에스 감독은 결국 3라운드를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됐다. 지난 시즌 아시아쿼터로 합류해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준 알리(이란)와 재계약했지만, 새로 데려온 아라우조 역시 리그 외인 중 최하 수준을 왔다 갔다 하는 데다 토종 선수의 중심축을 잡아줘야 할 한태준과 김지한 역시 파에스 감독 체제 하에서는 경기력의 기복이 심했다. 무엇보다 첫 시즌엔 선수 탓을 하는 인터뷰가 거의 없었던 반면 올 시즌 들어서는 선수 탓을 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자주 남기면서 초조함을 많이 드러냈다.
결정타는 3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28일 대한항공전 1-3 패배였다. 대한항공은 정지석이 이미 발목 부상으로 8주 결장을 맞은 데 이어 이날 정지석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임재영마저 경기 도중 왼쪽 무릎을 다치며 교체됐지만, 파에스 감독의 우리카드는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를 이겨낼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경기 후에 선수들의 태도를 문제삼는 인터뷰를 남겼다. 결국 우리카드는 30일, 파에스 감독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시즌부터 팀을 이끌었던 파에스 감독이 구단과 합의로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사실상 경질이다. 우리카드 구단 관계자는 “29일 오후에 구단주 보고 후 30일 미팅을 통해 사령탑 교체를 전했다”라고 말했다. 우리카드는 파에스 감독과 1,2라운드를 마칠 때도 미팅을 통해 반등을 부탁했기에 파에스 감독도 이번 결정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프로스포츠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며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에스 감독이 내려놓은 지휘봉은 박철우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끈다. 2023~2024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물러난 뒤 2024~2025시즌부터 KBSN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박철우 감독대행은 올 시즌을 앞두고 우리카드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의 길을 밟았다. 지도자 경험은 다소 짧지만, 선수단 내에서 신뢰가 두텁다는 평가다. 우리카드 관계자도 “파에스 감독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뒤 사령탑 교체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박철우 코치가 선수단에 있다는 게 큰 영향을 미쳤다”라면서 “박철우 대행 체제로 시즌 끝까지 간다. 믿고 간다”라고 전했다.
이번 파에스 감독의 사실상 경질은 지난 시즌 불었던 외국인 감독 열풍의 허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분석된다. 외국인 감독은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선수단 면면을 평가하고 새 판을 짤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다보니 선수단과 소통 능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고, 일정이 빡빡한 V리그 특성에 적응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이력이 좋은 외국인 감독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과연 박철우 대행 체제에서 우리카드가 남은 후반기에 반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