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이 지난 2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심판진의 비디오판독 번복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남자프로배구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이 격돌한 지난 2일의 천안 유관순체육관. 선수들의 기합 대신 난데없는 고성이 코트를 채웠다. 석연치 않은 오심 때문이었다.
디미트로프(OK저축은행)의 스파이크가 블로커 손가락을 스쳐 아웃됐다. 하지만 최초 판정은 ‘노 터치’, OK저축은행이 곧장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리플레이가 전광판에 흘렀지만, 서남원 경기위원의 판정은 또 ‘노 터치’였다. OK저축은행의 원성이 빗발쳤다. 그러자 서 위원이 재판독에 들어갔고, 결국 ‘터치 아웃’으로 판정을 번복했다. 이번에는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OK저축은행의 득점에 못이 박히면서 일단락 됐다.
두 가지 쟁점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블랑 감독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판정 주체에 대한 지적이다. 비디오판독에 ‘경기위원’이라는 심판 외 인물이 포함되는 것을 두고 “주심이 아닌 인물이 이렇게 판정을 뒤집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이 지난 2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심판진의 비디오판독 번복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 국제배구연맹(FIVB) 비디오판독 과정에 ‘경기위원’이라는 주체는 없다. 대신 비디오판독 전담 심판이 있다. 지난 2일 경기 부심을 맡았던 최재효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은 “FIVB는 챌린지 심판이 주심과 합의해 판정을 내린다. V리그도 경기위원, 심판위원, 부심이 모여 합의 끝에 결정을 내린다. 경기위원 홀로 판정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최종 합의 결과를 전달하는 역할을 경기위원이 맡긴 하지만, 독단적인 판정은 아니라는 뜻이다.
찜찜한 뒷맛은 남는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KOVO에 엄연한 심판진들이 존재하는데, 굳이 또 다른 주체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FIVB처럼 챌린지 심판을 별도로 둬서 확실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쟁점은 융통성과 원칙 사이의 딜레마다. 원칙대로라면 비디오판독이 내려지면, 재판독은 불가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KOVO가 2023년 1월 긴급대책회의를 통해 세운 ‘비디오판독 결과 발표 직후, 명확한 오류를 발견한 경우에는 이미 제공된 화면에 한해 재확인 절차를 거쳐 판정을 정정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이 발동될 때다. 그날 서 위원이 재판독에 들어갔던 근거다.
서남원 경기위원(가운데)이 심판위원, 부심과 함께 비디오판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문제는 이 가이드 또한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명확한 오류’라는 표현은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어느 한 팀의 강력한 항의가 곧 명확한 오류를 의미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 가이드는 명문화된 규정도 아니다. 최 심판은 “규정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당시 전 구단과 합의 끝에 리그 전체에 공지가 된 부분”이라고 말했지만, 원칙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 심판은 “규칙과 규정의 목적은 판정으로 억울한 팀이 나오는 걸 없애기 위함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규정을 만들기 위해 심판진도 노력 중이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봤던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터져나오는 게 스포츠”라며 “심판들이 최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1차 판정을 위해 전문성을 기르는 게 첫 번째다. 이후 터지는 변수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를 통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