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대화를 잘하는 게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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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대화를 잘하는 게 힘든 이유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대표작 '뉴욕 3부작'엔 피터 스틸먼이란 인물이 나온다. 전직 신학 교수인 이 사람은 바벨탑 이후 인간 언어가 타락해 사물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믿는다. '사과'란 단어와 '사과의 본질'이 분리됐다는 것이다. 그는 갓난아이가 인간 언어를 한 차례도 접하지 않으면 신의 언어를 말하리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아파트에 가둔 채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결과는 끔찍했다. 아홉 살 때 구조된 아이는 하늘의 언어는커녕 짐승 같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스틸먼의 잔혹한 실험은 인간의 삶에서 언어와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대화는 안전감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돌봄과 위로 같은 사회적 완충 효과를 제공한다. 하소연할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면역력이 유지된다.


'홀로'는 비만이나 흡연보다 건강에 해롭다. 고립돼 대화가 단절된 사람은 일찍 죽을 확률이 50% 높아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데면데면한 이웃,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활력이 넘치고 행복도가 올라간다. 주변 세계의 따스한 친밀성을 확인하는 것보다 우리를 편안하고 기쁘게 하는 건 없다.


마티아스 멜의 유명한 연구에 따르면, 속 깊은 대화를 자주 하는 사람이 돈 많고 성공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행복한 이들은 친구나 지인과 자주 만나고, 가벼운 수다나 피상적 잡담보다 속마음 담긴 진지한 대화를 두 배 이상 더 즐겼다. 깊은 대화는 행복에 이르는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이다.


그러나 항상 말을 주고받으며 사는데도, 우리는 대화에 익숙지 않다. 자기가 대화를 잘한다고 여기는 이는 드물고, 만족을 느끼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의 대화를 공허하다고 생각하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후회한다. 이는 우리 인지 능력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상대방 말이 끝나고 내가 말을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0.2초 정도다. 그러나 우리 뇌가 적당한 단어를 찾고 문장을 구성하려면 최소 0.6초가 걸린다. 대화가 숱한 말더듬과 헛기침을 동반하는 이유다.


대화를 잘하는 건 본래 힘들다. 수시로 변하는 흐름에 따라 상대 반응을 예측한 후 내 말을 조절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더욱이 들으면서 생각하고, 상대 말이 끝나자마자 말을 이어야 한다. 빠르면 말을 가로채게 되고, 늦으면 어색한 침묵에 빠진다. 어느 쪽이든 불편하다.


더욱이 에너지를 아끼려고 우리 뇌는 상대 생각을 지레짐작한다. 이런 자기 편향적 이해가 말실수를 부르거나 오해로 이어지지 않는 건 기적에 가깝다. 실수를 의식해 말을 고르거나 침묵하면 말이 자꾸 끊겨 대화가 지루해진다. 이로부터 대화의 역설이 나타난다. 대화를 자주 해야 잘사는데, 대화를 잘하는 건 너무나 괴롭다.


'어떻게 말해야 사람의 마음을 얻는가'(웅진지식하우스)에서 앨리슨 우드 브룩스 하버드대 교수는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집약해서 대화를 잘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대화를 잘하려면 주제, 질문하기, 가벼움, 배려의 네 요소를 갖춰야 한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적절한 주제를 선택할 줄 알고, 질문을 활용해 다른 주제로 이동하거나 더 깊이 파고들며, 수시로 유머를 구사해 대화가 무겁고 따분해지는 것을 막고, 대화 도중 상대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대화는 주제에 따라 잡담(small talk), 맞춤 대화, 깊은 대화 등 세 층위로 나누어진다. 대다수 대화는 잡담에서 시작해 깊은 대화에 이를 때 성공한다. 대화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진 않지만, 단계별로 적절한 주제를 준비해 두면, 인지적 부담을 덜어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잡담은 날씨나 음식처럼 누구에게나 무난한 주제로 이루어진다. 이는 대화의 디딤돌 역할을 하지만, 관계 진전엔 큰 도움이 안 된다. 잡담을 빠르고 간결하게 끝맺고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상대는 당신을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맞춤 대화는 직업, 취미, 상황 등 상대방과 직접 관련된 구체적 주제를 다룬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에게 "요즘 아홉 살짜리는 뭘 좋아하죠"란 질문은 친밀하고 풍부한 대화로 이어지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상대에게 맞춘 화제를 꺼내는 사람이 높은 호감을 얻어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질문하기'다. 질문은 가장 강력한 대화 도구다. 인간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뇌의 보상 중추가 켜진다. 질문은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에게 도파민을 선물하는 행위다. 질문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대화를 만족스럽다고 기억한다. 특히 상대 이야기에 반응해 관련한 후속 질문을 꼬리 물면서 던지는 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이를 통해 관계가 튼튼해지면, 비로소 속마음을 나눌 수 있다.


깊은 대화는 가치관과 꿈, 수치와 두려움, 늙음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주제에 관해서 대화하는 걸 꺼린다. 그러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대화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가벼운 잡담이나 종잡을 수 없는 수다보다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신뢰도와 유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정은 이로부터 생겨난다.


하지만 어떤 대화든 즐겁게 접근해야 한다. 대화를 위험한 행위가 아니라 흥미로운 놀이로 여길 때 사람들은 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대화의 흐름은 물 흐르듯 매끄럽게 변한다. 대화는 친구를 만나 조잘대는 아이들 같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호감의 격차에 시달린다. 우리는 상대가 실제 느끼는 호감도보다 자신에 대한 상대방 호감도를 과도하게 낮게 책정한다. 말할 때마다 지나치게 조심하고 불안에 떠는 이유다. 상대도 우리와 똑같다. 비평적 태도를 버리고 상대의 말에 호응해 추임새를 넣고, 후속 질문을 던지면서 반응할수록 대화는 잘 이어진다. 배려는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함으로써 대화를 매끄럽고 풍요롭게 만든다. 친구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이가 아니던가.


좋은 대화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상황에 맞춰 적절한 주제를 던지고, 입은 닫고 질문을 많이 해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들며, 적절한 유머와 따뜻한 반응으로 상대를 환대하는 대화의 기술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하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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