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1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 첫 오찬 간담회.
기자들 앞에 선 주 위원장은 인공지능(AI) 분야의 금산분리 완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라며 직접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너무 한쪽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 상당히 좀 불만이고" "괜히 뭐 기업들이 뭐 투자회사 만들어서 손정의처럼 여기저기 투자 확대하고" "제조업들은 본업에 충실해야한다고 보고" "지금 (AI)산업의 불확실성도 크잖아요?" "자꾸 규제탓만 하지 말고" "왜 30년, 50년, 100년 된 규제를 바꾸려 하죠?" "금산분리가 허들이라고 전 보지 않습니다" 등등
AI 투자 물꼬를 터주자는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금산분리 완화 논의는 주요 경제부처 수장들이 잇달아 "검토해보겠다"고 받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대통령·경제부처 수장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주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산업 진흥과 규제 정책의 정면충돌로 비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발언 요지를 종합해보면 금산분리 완화로 첨단산업 자금 숨통을 틔워달라는 경제계 요구는 '남의돈 끌어와 지배력을 키우겠다는 일부 기업의 이기심'이고, 투자 활성화에는 공감하지만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헐거나 각자 자금 동원 여력 내에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산업 중심의 발전 논리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규제당국 수장의 입장도 일견 수긍이 간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자고 할 때 옆도 뒤도 보자는 목소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첨단산업 투자를 '또 하나의 문어발'로 규정하고 '대기업 특혜'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규제일변도는 곤란하다. 지금은 자본과 기술이 융합되는 시대다. 오픈AI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을 움직이는 힘은 거대 자본이다. 제조업체는 본업에나 충실하고, 수백조원이 소요되는 첨단산업 재원 조달은 전통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은 이 같은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문이다.
AI는 투자단위가 수백조원이다. 한 기업이 신용을 기반으로 끌어올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잠재적으로 큰 수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상당한 위험도 수반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다. 투자자들은 이자가 아닌 수익을 나누는 지분투자(에쿼티)를 원한다. 경제계가 지주회사 산하에 금융펀드를 굴릴 수 있는 투자전문회사(GP)를 허용해달라는 이유다. 은행 대출·채권 발행·유상증자 등 전통적 조달 방식과는 성격이 맞지도 않다. 보수적 투자판단을 하는 은행들은 'AI 거품론'이니 '반도체 사이클'이니 운운하면서 대출해주려고 하지 않을 거다. 현재 시가총액이 400조원도 안 되는 SK하이닉스가 보통주 유증으로 수백조를 투자받으면 주주가치 희석을 넘어 아예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 현 체제에서는 AI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단 얘기다.
AI 전쟁은 이미 개별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의 핵심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주 위원장의 말대로 금산분리 완화가 AI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AI가 성장률이 고꾸라진 한국경제에 돌파구가 돼 줄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 AI 생태계가 한국 기업을 원하는데 한국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모험자본들이 앞다퉈 나서는데, 이들의 손발을 아예 묶어버리는 불합리한 규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적 해이는 관리·감독 규정을 통해 극복하면 될 일이다. 43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금산분리 규제가 단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되는 금과옥조는 아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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