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를 활용해 가상의 다문화 인물과의 인터뷰를 구성하시오. 단, 생성형 AI를 이용한 10번 이상의 질문과 10번 이상의 답변 듣기가 포함된 총 20번 이상의 대화를 진행해야함."
서울의 한 중학교 도덕 시간,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검색의 시대를 지나 질문의 시대를 사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다문화 사회 관련 숙제에는 이와 같은 조건이 붙었다. 어른들이 AI 사용 환경과 윤리적 문제들을 고민하는 사이 챗GPT는 이미 교실 안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학생들이 AI를 사용하지 않고 숙제를 하거나 시험을 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용 금지가 아닌 투명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예컨대 런던정경대(LSE)는 AI 사용을 '출처 표기와 함께 허용되는 학습 도구'로 분류했다. 미국 하버드대는 학생들의 AI 사용을 담당 교수의 재량에 맡기고, 사전에 AI 사용 정책을 명확히 정해 학생들에게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대학협의회는 아예 AI 리터러시를 필수 역량으로 규정해 교과·평가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 교실 안으로 들어온 AI를 위험 요소가 아닌 관리 해야 할 새로운 학습 환경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반면 현재 한국 대학의 대응은 단속 중심이다. 최근 국내 주요 대학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시험에서 챗GPT·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들이 적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의 생성형 AI 활용을 어떻게 제한하고 단속할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고려대에서는 교수진이 'GPT 킬러(AI 활용 탐지) 5% 미만'을 충족한 과제 제출을 요구하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AI 활용 탐지 프로그램을 토대로 학생들을 의심하고, AI 사용 여부를 일일이 추적해 AI 활용 자체를 부정행위로 규정하는 게 현재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작성하는 보고서와 시험의 상당수는 AI로 몇 초면 생성 가능한 형태가 됐다. 대학이 문제의 초점을 '지금의 평가 방식이 AI 시대에 적합한가'에 맞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로 대체 가능한 평가를 고집하면서 AI 활용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교육적 퇴행이다.
산업계는 이미 AI 활용 능력을 기본 업무 역량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은 그 역량을 금지하면서 동시에 그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말한다. 교육과 산업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한국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부정 시험 논란을 단순한 학생 개인의 일탈 사건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낡은 평가방식으로 미래 기술에 익숙한 학생들의 역량을 측정하려 할 때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점검하고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탐지기와 단속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학습 윤리·평가 기준·교육 철학의 재정립일 것이다. AI를 부정행위의 원천으로 볼 것인지, 미래 역량을 확장하는 기회로 볼 것인지는 결국 각 대학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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