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맥]엔비디아 블랙웰 26만장, 그 숫자에 가려진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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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맥]엔비디아 블랙웰 26만장, 그 숫자에 가려진 허와 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26만 장을 한국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한지 한달이 되어간다. 세계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AI) 가속기 26만개가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주는 상징성은 많은 이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이후 AI 버블론이 불거지면서 엔비디아의 주가는 기대치를 밑돌아 충격을 주고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발표에는 분명 실(實)과 허(虛)가 동시에 존재한다.


우선 실(實)이다. 블랙웰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아키텍처로, 초거대 언어모델 학습은 물론 제조·바이오·로보틱스 등에 쓰이는 범용 AI 인프라의 핵심 장비다. 한국이 대규모 물량을 확보했다는 것은 글로벌 AI 연산 자립도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네이버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공급 대상이라는 점도 산업 전반의 AI 전환 속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허(虛)의 측면도 적지 않다. 우선 26만 장이라는 숫자가 '즉시 공급'이나 '계약 확정'으로 곧장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향후 몇 년에 걸쳐 공급할 수 있는 예상 규모, 혹은 할당량 성격에 가깝다. 실제 기업별 도입 일정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GPU 26만 장이 단숨에 한국으로 들어와 바로 가동될 것처럼 여론이 흘러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 도입 일정, 활용 능력 등 여전히 불투명

GPU를 돌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26만장이라면 수 기가와트(GW)에 이르는 전력과 냉각 인프라 등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으면 들여오더라도 GPU를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력·소프트웨어 생태계 차원에서도 따져볼 게 많다. 시스템 아키텍처, 학습 엔지니어, 모델 최적화 전문가가 없다면 수십만 장의 GPU는 유지비만 잡아먹고 효율은 떨어지는 '철덩어리'가 될 수 있다. 최첨단 기기가 3~5년만 지나면 구형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국은 AI 인재 부족 문제에 구조적으로 노출돼 있으며, GPU 도입과 활용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추론형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설계해 이제 막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 토종 팹리스 기업들에게는 된서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엔비디아 GPU의 아성에 도전한 우리 기업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토종기업들에겐 된서리…전력·규제·인재양성 냉정히 고민해야

GPU 26만장 공급이라는 약속에는 중국 시장을 잃어버린 가운데 새로운 생태계를 한국에 뿌리내리고 싶은 엔비디아의 전략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엔비디아의 GPU 공급은 기술적 사안인 동시에 산업·정책적 협상의 성격도 띤다. 그런데 우리는 엔비디아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엔비디아가 독주할 기회를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구글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구글은 엔비디아의 GPU를 쓰지 않고 자체 텐서프로세서유닛(TPU)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이 GPU 26만장을 제대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의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 할 수 있는가이다. 26만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실질적 경쟁력으로 전환해낼 수 있는 인프라·규제·인력·전략의 정합성이다. GPU 확보는 출발점일 뿐 이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할지, 아니면 '정책 홍보'로 끝날지는 앞으로의 선택에 달렸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축배가 아니라 전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데이터센터 규제를 어떻게 풀지, AI 인재를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하고 한국의 독자적 AI 생태계 구축에 대한 냉정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젠슨 황의 선언과 26만이라는 숫자에 도취되면 실(實)은 취하지 못하고 허(虛)만 드러내는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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