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는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공존이 곧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와 민족의 차이가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종교교육은 자기 신앙의 울타리에서 탈피해 다름을 배우고 공존을 실천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함께 배우고 봉사하는 현장은 종교가 여전히 평화를 가르칠 수 있는 ‘공적 지혜의 학교’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4대 종교 성직자들이 토크와 노래로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꾸려진 만남중창단 모습. 다름을 배우는 신앙, 함께 사는 평화 종교 간 대화는 단순히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신앙의 진리를 타인의 신앙 속에서도 발견하려는 존중의 행위이며, 서로의 다름 속에서 보편적 진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고동원(Paul Dongwon Goh) 호주연합교회(UCA) 총회장은 토착신앙·다문화주의·세속주의 교육 사례를 통해 종교가 사회의 다양성을 억누르는 대신 포용의 윤리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신앙은 나만의 구원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다리”라고 말한다.
우풀 카투감팔라(Upul Katugampala) 스리랑카 감리교 신학교 학장은 불교와 기독교 간의 교육 협력 사례를 통해 종교 간 이해의 실천을 보여준다. 그가 이끄는 ‘지역 종교 간 협의체’는 불교 승려, 힌두 사제, 이슬람 율법학자, 기독교 성직자들이 함께 지역 갈등과 청년 실업, 환경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한 공동체다. 이 경험은 종교 간 대화가 추상적 담론에서 벗어나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교육 실천임을 증명했다.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는 ‘다름을 배우는 태도’가 지리한다. 배움이란 타자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훈련이다. 진정한 종교 간 교육은 공감의 학습이며,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기르는 일이다. 다문화 시대의 종교교육은 더 이상 특정 신앙의 충성을 강화하는 데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서로 다른 믿음 속에서 공통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로 확장되어야 한다.
종교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신앙의 언어가 행동으로 바뀔 때이다. 그 행동은 타인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실천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종교교육은 ‘무엇을 믿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사는가’를 묻고 있다. 호주의 연합교회는 토착 신앙과 다문화주의, 세속주의를 교육 속에 통합하여 신앙 공동체들이 인권·기후·난민 문제 등 인류 보편의 정의를 위한 협력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고 총회장은 종교교육을 “믿음의 수업이 아니라 책임의 훈련”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실천은 종교교육이 ‘종교 간 이해’를 넘어 시민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함께 배우고 존중하는 법을 익힐 때, 사회는 폭력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결국 종교 간 협력은 인간의 공통된 도덕감을 발견하는 일이요, 대화의 교육은 ‘다름 속에서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심어주는 과정이다.
오늘날 인류는 기술로 거리를 좁혔지만,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다. 신념의 차이는 여전히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이 시대의 종교교육은 신앙의 방어벽을 허물고, 차이를 이해하며, 다양성 속의 하나됨을 배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21세기의 세계는 다종교·다문화 사회다. 하나의 진리만을 절대화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종교가 다시 희망의 언어가 되려면, 먼저 스스로를 절대화하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종교 간 대화와 교육의 혁신이다.
종교 간 대화는 교리를 혼합하거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신앙 안에서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하고, 타인의 믿음 속에서도 하느님의 숨결을 알아보려는 성숙한 신앙의 실천이다. 대화는 설득보다는 공감의 훈련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숙 과정이다. 이러한 대화의 기반에는 교육이 있다. 교육은 사회의 언어를 바꾸는 힘이다.
폴 고 호주연합교회 총회장. 종교 간 협력은 평화를 실천하는 힘 호주의 다문화 신학교와 스리랑카의 종교협의체처럼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함께 배우고 봉사하는 현장은 종교가 여전히 평화를 가르칠 수 있는 ‘공적 지혜의 학교’임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종교교육은 교리의 수업이 아니라 인류의 교실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불교가 자비를, 기독교가 사랑을, 이슬람이 평화를, 유교가 인(仁)을, 그리고 토착 신앙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 그 모든 가르침은 다르지만,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계 안에서 완성된다. ”는 하나의 뿌리로 귀결된다.
종교교육의 미래는 다양성의 인정과 공존의 윤리 위에서 다시 써야 한다. 종교가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때, 그 교육은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우리가 서로의 신앙 안에서 인간의 공통된 진실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비로소 종교는 세계의 언어가 될 것이다. 그 언어는 “다른 신앙 안에서도 우리는 같은 진리를 배운다. ”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