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바다의 잔향'을 한 잔에 담았다…샤블리의 정수

글자 크기
[아경와인셀라]'바다의 잔향'을 한 잔에 담았다…샤블리의 정수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샤블리(Chablis)에서는 샤르도네(Chardonnay)가 아니라 키메리지안(Kimmeridgian, 고대 토양)을 마신다. "


샤블리의 와인은 다른 지역의 샤르도네 와인과 격이 다른 특유의 바삭한 광물성 풍미와 역동성을 품고 있다. '윌리엄 페브르(Domaine William Fevre)'의 셀러 마스터인 디디에 세귀에(Didier Seguier)는 이같은 캐릭터의 근원으로 화석 가득한 석회암 토양을 꼽았다.


와인 잔에 담긴 바다의 잔향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산지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중세 베네딕트회의 분파인 시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며 와인 산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샤블리에서 생산된 와인은 욘(Yonne)강을 따라 센(Seine)강을 타고 북서쪽으로 180㎞가량 떨어진 파리로 흘러들며 17세기부터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재배 면적이 4만 헥타르(ha)를 넘기고, 욘강 인근에는 와인을 실어 나르는 바지선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프랑스 전역에서 철도망이 건설되며 샤블리는 크게 흔들린다. 남부의 저렴한 와인들이 철도를 타고 파리로 급격히 유입됐는데, 정작 샤블리는 철도망에서 소외돼 유통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여기에 필록세라 병충해까지 겹치면서 샤블리는 가난한 농촌 마을로 전락하게 된다. 다행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샤르도네 붐이 일면서 샤블리는 다시 일어섰고, 모방 불가능한 위대한 와인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게 됐다.



샤블리는 포도밭이 바다의 파도처럼 드넓게 물결치는 곳이다. 이곳의 포도밭이 바다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히 은유만은 아니다. 샤블리는 과거 전역이 바다였던 곳으로 바다에 잠겨 있던 석회암과 점토로 된 넓은 분지가 위로 솟아올라 형성됐다. 오랜 시간 무수한 해양 퇴적물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거칠고 하얀 석회질 토양에는 굴 껍데기와 암모나이트, 갯나리 등의 잔해로 가득하다.


바다를 품었던 과거는 샤블리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다. 이곳의 석회암은 쥐라기 후기의 암석으로 추정된다. 샤블리는 지층이 납작한데 토양의 아래쪽에 1억5000만년 전 형성된 키메리지안 석회질 토양이 깔려 있고, 그 위에 1억2000만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대적으로 젊은 포틀랜디언(Portlandian) 토양이 덮여 있다. 샤블리의 포도나무는 이 석회암 덩어리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깊이 20m 이상까지 단단하고 얇은 뿌리를 내리는데, 샤블리 와인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수한 광물성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샤블리에서는 오직 샤르도네 품종만이 재배되는데, 이곳의 샤르도네는 차가운 석회암 점토를 만나 기름진 재배조건에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풍미를 만들어 낸다. 샤블리 와인은 단단하지만 거칠지 않고, 돌과 미네랄이 연상되지만 동시에 푸른 건초향이 나는데, 실제로 어릴 때는 초록빛을 띤다. 프랑스인들은 훌륭한 샤블리 와인의 독특한 풍미를 부싯돌 같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고급 샤블리는 부싯돌 풍미에 짭짤한 광물 가루, 라임 껍질, 생크림 타르트 같은 특징이 더해져 감각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윌리엄 페브르, 와인에 토양의 진심 새긴다

윌리엄 페브르는 샤블리에서도 손에 꼽히는 최상급 생산자다. 페브르 가문은 250년 이상 샤블리의 중심에서 포도를 재배해 온 집안으로, 윌리엄 페브르는 1959년 가족이 소유한 포도밭 가운데 7ha를 인수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와이너리를 설립한다. 와이너리는 토양과 떼루아의 투명한 반영이라는 철학 아래 움츠러들었던 샤블리의 부활과 세계화의 선봉에 섰고, 현재는 샤블리 지역에서 가장 넓은 78ha의 포도밭을 운영하는 생산자로 우뚝 섰다. 윌리엄 페브르는 그랑 크뤼 포도밭도 15.2ha 보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샤블리 생산자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이다.


윌리엄 페브르는 2000년부터 50ha 규모에서 유기농법을 선도적으로 도입했고, 2010년부터는 모든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실천해왔다. 2014년 샤블리 지역 도멘 중 최초로 고 환경가치 인증(HVE·Haute Valeur Environnementale) 최고 등급을 획득했고, 2026년까지 모든 포도밭을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르도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로 유명한 '도멘 바롱 드 로칠드 라피트(Domaine Barons de Rothschild Lafite)' 가문에 인수되며 오너십에 변화가 생겼다.


최근 방한한 피에르-앙투안 발랑(Pierre-Antoine Ballan) DBR 라피트 아태 지역 매니저는 "로칠드 가문의 윌리엄 페브르 인수는 페브르 가문의 스타일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샤블리의 정통성과 탁월함, 순수성, 떼루아에 대한 존중이라는 페브르 가문의 철학과 양조 스타일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레 클로, 불멸에 도전하는 샤르도네

샤블리의 와인은 '샤블리 그랑 크뤼(Chablis Grand Cru)'와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Chablis Premier Cru)', '샤블리(Chablis)', '프티 샤블리(Petit Chablis)' 등 4개 등급으로 나뉜다. 전체 5821ha의 포도밭 가운데 그랑 크뤼 포도밭은 전체 2%인 101ha에 불과하고, 프리미에 크뤼도 13%(778ha) 수준이다. 나머지 일반 샤블리와 프티 샤블리가 각각 64%(3712ha), 21%(1230ha)를 차지하고 있다.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William Fevre Chablis)'는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이다. 양조 후 10%는 프렌치 오크통에 나머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10~12개월 숙성해 만든다. 우아하면서도 신선함이 강조되는 스타일로 샤블리 와인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교과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포도는 세렝(Serein) 강 양쪽에 걸쳐 있는 석회질과 점토질 마를 토양에서 재배되며, 하층 토양은 미네랄과 화석화된 굴 껍데기로 풍부해 샤블리 와인 특유의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 맑은 황금빛의 와인은 라임·레몬·감귤·시트러스 껍질 향이 펼쳐지며, 백도·흰 꽃의 복합적인 아로마로 이어진다. 입안에서는 매끄러운 구조감과 미네랄감이 강하게 느껴지며, 풍부한 과실 풍미가 길게 여운을 남긴다.



최고 품질의 그랑 크뤼 포도밭은 레 클로(Les Clos), 블랑쇼(Blanchots), 부그로(Bougros), 보데지르(Vaud?sir), 발뮈르(Valmur), 레 프뢰즈(Les Preuses), 그루누이유(Grenouilles) 등 7개의 구획(클리마)으로 구성돼 있다. 그랑 크뤼 포도밭은 모두 샤블리 마을 바로 위쪽에 남향과 서향 비탈에 모여 있는데, 북반구에서 남향 비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등급 시스템이다.


7개 클리마 모두 고유의 스타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풀바디를 자랑하는 레 클로가 최고로 꼽힌다. 레 클로는 26ha의 가장 크고 유명한 클리마로, 점토 석회질 토양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방향성이 풍부하고 미네랄 풍미뿐 아니라 장기 숙성능력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훌륭한 빈티지의 레 클로 와인은 시음 적정기에 소테른(Sauternes) 지구의 스위트 와인처럼 강렬한 향을 발산한다.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 그랑 크뤼 레 클로(William Fevre Chablis Grand Cru Les Clos)'는 샤블리 그랑 크뤼 와인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 등급 와인이다. 와인은 맑은 황금빛을 띠며, 백도·청사과·자몽·레몬·라임 등 시트러스와 핵과일 과실 향 중심으로 부싯돌, 흰 꽃, 민트와 오렌지 껍질의 섬세한 노트가 어우러진다. 입안에선 매우 응축된 과실 풍미와 함께 뛰어난 질감과 산도감이 느껴지며, 짠맛을 동반한 강렬한 미네랄 피니시가 긴 여운을 남긴다. 숙성력도 놀랄 만큼 뛰어나 불멸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