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가루쌀(분질미)' 산업화 사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입 밀을 대체하겠다며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식품업계는 "비싸고 번거롭다"며 외면하는 분위기다. 생산은 늘었으나 판매는 부진하고, 국산밀 산업까지 위축됐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31일 식품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가루쌀 매입량은 2만704t인 반면 올해 8월 말 기준 판매량은 2625t에 그쳤다. 판매율은 12.6%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식품기업과 베이커리 업계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조사에서도 올해 연말 기준 예상 소비량은 5300t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늘어나는 재고 약 1만5000t을 주정(술 원료)용으로 전환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식품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시범사업 당시에는 정부 보조금 덕에 원재료를 저렴하게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밀가루보다 훨씬 비싸다"며 "원가 부담이 커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밀가루 중심의 생산설비를 가루쌀용으로 전환하려면 배합비부터 공정 전체를 손봐야 한다"며 "설비 투자비까지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23년부터 3년간 108억원을 투입해 '가루쌀 산업화'에 속도를 냈다. '밀 10% 대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말 생산 목표를 대폭 하향했다. 기존 계획(면적 1만5800ha·생산 7만5000t)은 수정안에서 9500ha·4만5100t으로 줄었다. 1년 만에 40% 축소된 셈이다.
'가루쌀 제품화 패키지 지원사업'에는 농심,삼양식품, 하림산업, SPC삼립, 해태제과, 오뚜기, 신세계푸드, CJ푸드빌 등 52개 식품사가 참여했다. 그러나 올해는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빠졌다. 해태제과의 '오예스 위드미(with米)'는 판매가 종료됐고, 농심의 '별미볶음면 매콤찜닭맛'도 단종됐다. 국내 주요 제과업체 관계자는 "수입밀을 대체하기엔 물량이 부족하고, 가공성과 식감에서도 밀가루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시장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참여 업체 52곳 중 39곳이 매출 실적 공개를 거부했다. 정부 역시 판매 품목이나 판매량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사업 방향도 아직 불투명하다"며 "정권 교체 이후 관련 논의가 한동안 잠잠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루쌀의 잠재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향이 좋고 점착성이 높아 일부 제품군에서는 밀을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재배 면적이 제한적이고 원료 공급망이 불안정해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식품업계의 관계자는 "생산이 확대되고 원가가 낮아진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가루쌀 육성 정책의 그늘에는 국산밀 산업의 위축도 자리하고 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산밀 재고는 2020년 1만t에서 올해 6만t으로 6배 급증했다. 지난해 생산량(3만7000t)의 1.6배 규모가 창고에 쌓인 셈이다. 생산량 역시 2023년 5만1000t에서 2024년 3만7000t으로 줄었다. 정부 지원이 가루쌀에 집중되면서 국산밀 산업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3년 당시 정부는 "가루쌀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며 사업 추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2023년 38곳(2000ha)이던 가루쌀 생산단지는 지난해 135곳(8400ha), 올해 151곳(1만ha)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단지당 최대 5억 원 규모의 시설·장비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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