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금융 대전환]①왜 지금 '생산적 금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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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금융 대전환]①왜 지금 '생산적 금융'인가
편집자주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국민적 불만이 커지고 있다. 소득은 정체된 반면 집값은 치솟아 주거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는 금융권의 과도한 부동산 금융이 지목된다. 금융회사가 기업이나 첨단산업 등 생산적인 분야에는 자금을 공급하지 않고 부동산 담보대출 등 비생산적 부문에 집중하면서 시장에 과도한 신용이 풀려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회사들이 반성의 움직임을 보이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산적 금융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금융회사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문제 때문에 유효한 통화 정책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부동산과 가계부채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은행이 부동산에 치중한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평가 역량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사업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


지난 4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전 금융위원장,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공개 토론을 열었다.

주제는 한국의 부동산 신용집중 문제와 그 해결방안이었다. 한국의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수장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한 가지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부동산 중심의 신용구조, 한계에 봉착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국 금융시장의 부동산 신용집중은 심각한 수준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이 부동산 대출에 치중해 수익을 추구하는 동안 가계부채 급증·집값 상승·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가 심화했고 경제의 질적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현재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이 발생했고 경제수장의 우려는 현실화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정부가 제시한 핵심 정책 방향은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은 가계부채나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분야에 쏠려 있던 한국의 금융산업을 기업 혁신과 신산업 투자, 구조 조정 등 금융 본연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에 처음 도입됐고 문 정부를 계승하는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정책을 꺼내 들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던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생산적 금융' 정책을 도입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실장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의 핵심적 기능은 선별기능을 통해 한정된 자금이 꼭 필요한 곳에 흘러가게 하는 것"이라며 "금융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자금을 적시에 공급하면 이를 마중물 삼아 혁신적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전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금융이 레버리지 창출과 단기 트레이딩에 치중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화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주범은 대형 금융회사와 그 임원들"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의 금융감독청장을 지낸 아데어 터너는 저서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에서'에서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시장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돈을 만들어내고 그 돈은 새로운 곳보다는 부동산과 같이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거래하는 데 쓰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에서 파생된 과도한 부채가 부동산 투기와 같은 비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면 경제를 해치게 된다"며 "자금이 금융상품 거래가 아니라 제조업이나 서비스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시 금융이 부동산·수도권·예금·대출에 과도하게 쏠리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64%가 부동산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을 크게 상회한다.


작년 국내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은 약 413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9년 새 1.5배 급증했다. 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잔액은 2019년 말 1167조원에서 2024년 말 1674조원으로 늘었다. 전체 대출에서 부동산 대출 비중 역시 2020년 66.6%에서 2024년 69.6%로 꾸준히 상승했다. 금융회사는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의 안정적 수익을 확보했지만, 그 결과 경제의 성장동력은 약화하고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커졌으며 가계소비 위축으로 민생경제도 악화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한국은 금융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BIS는 민간신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생산적 부문에 대한 선별 기능이 약화하고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민간신용 내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생산성이 둔화하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을 콕 집어 이런 부정적 상황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올해 1분기 말 200.7%(BIS 기준)에 달해 적정치로 꼽히는 100% 선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이는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 수준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한정된 금융자원이 자본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약화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금융 안정성과 금융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50조원 국민성장펀드로 생산적 투자 실행

부동산 중심의 금융 구조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결국 정부가 '생산적 금융' 대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재명 정부는 정책금융·금융회사·자본시장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금융 부문에서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첨단기업 성장을 지원한다. 금융회사 부문에서는 은행·보험·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보다 생산적인 분야에 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자본시장 부문에서는 모험자본 공급 기능을 강화하고 불공정거래 엄단, 일반주주 권익 강화 등 시장 신뢰 회복에도 나선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대로 성장동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 심화와 통상 여건 악화로 주력산업의 경쟁력 저하, 지역경제 침체가 우려되는 수준으로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취약계층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금융은 여전히 담보대출 등 손쉬운 이자 수익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며 "국가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금융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장을 주도해 재도약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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