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600도 쇳물과 빚는 특수합금…세아, 우주항공 도전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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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600도 쇳물과 빚는 특수합금…세아, 우주항공 도전 가속

20일 찾은 세아창원특수강의 경남 창원 3제강공장. 점심시간이 막 끝난 이곳은 여전히 뜨겁게 숨 쉬고 있었다.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건 1600도의 열기였다. 전기로 뚜껑이 열리자, 벌겋게 달아오른 쇳물이 출렁였다. 공기 중의 산소가 닿자 불꽃이 터졌고, 용융된 고철이 마그마처럼 요동쳤다. 귀를 뚫고 들어오는 쇳소리는 마치 엔진이 폭발하는 듯했다.


세아창원특수강의 3제강공장에서는 하루 평균 60t짜리 용강이 20회 넘게 녹아든다. 폐고철을 녹여 불순물을 태워내고, 다시 정련기를 거쳐 합금을 더한다. 단조나 압연 공정에 들어가기 전, 금속의 '혈관'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세아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한 방산과 항공우주용 고강도 합금의 시작점인 것이다.



특수강 정제의 심장, 항공우주 합금의 출발점

이날 생산된 쇳물이 흘러간 곳은 세아창원특수강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수직연주기(Vertical Casting)였다. 일반적인 만곡형 주조와 달리 세아의 연주기는 수직으로 서 있다. 녹은 쇳물이 중력 방향으로 곧게 떨어지며 응고되기 때문에 내부 응력과 뒤틀림이 거의 없다. 변형이 적고 결정 조직이 균일한 플룸(단조나 압연용으로 만드는 두꺼운 사각 강괴)이 완성된다. 공장 관계자는 "수직연주기는 응력 분포가 균일해 균열이 적고, 항공우주용 합금처럼 균질도가 중요한 제품 생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고청정도 쇳물은 특수제강공장 내 진공 유도용해로(VIM)에서도 생산된다. 공기 한 방울조차 허락하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 쇳물을 녹여내는 장치다. 공기 중 산소나 질소가 들어가지 않아 금속 조직이 고르게 유지된다. 그 옆에는 진공 아크 재용해로(VAR)와 전기 슬래그 재용해로(ESR)가 나란히 서 있었다. VAR은 고온 전류로 금속을 다시 녹여 미세 기포를 없애고, ESR은 슬래그 필터를 통해 불순물을 걸러낸다. 세아가 '한국형 특수강'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아창원특수강은 이 과정을 "정련 단계"라 부른다. 하나의 쇳물이 세 과정을 거치며 점점 맑아지고, 마침내 불순물 0.01% 이하의 '고청정 합금'이 만들어진다. 미사일, 전투기, 잠수함 등 극한 환경에서도 견디는 합금이 이곳에서 태어난다.


특수제강공장 한쪽에서는 열처리로를 통해 열처리를 마친 자주포 포신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900도로 달궈진 쇠가 물속에 푹 잠기는 순간, 수조 안쪽 노즐에서 물이 사방으로 분사되며 수면이 끓듯 요동쳤다. 포신 표면을 감싼 냉각수가 하얀 수증기 구름을 만들어 시야를 덮었다. 순식간에 온도를 떨어뜨려 내부 응력을 낮추고, 충격에도 버티는 강도를 만들어내는 '퀜칭(Quenching)' 과정이다. 현장 관계자는 "물의 압력과 분사 각도, 냉각 속도 하나까지 제어해야 균열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열기를 뒤로하고 찾은 단조공장에서는 금속을 두드려 형태를 잡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천t에 달하는 프레스가 쇳덩이를 눌러 모양을 잡는다. 계열사인 세아항공방산소재와 공동으로 개발한 항공기 날개 구조물 '윙스파(Wing Spar)'도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불에 달궈진 금속이 해머에 찍혀 점점 넓게 펴지며 날개 골격의 형태를 닮아간다. 세아는 한 덩어리의 강을 수십 차례의 단조로 눌러낸다. 결을 없애고, 내부 미세균열을 다잡기 위해서다. 이 반복이 바로 세아의 기술력이다.


소형압연공장에는 긴 쇳덩이가 롤러 위를 지나며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공장의 끝에는 와이어 로드(Wire Rod)라 불리는 철사뭉치가 회전하며 감겨 있었다. 이 선재는 자동차 엔진 밸브, 항공기 베어링, 방산용 스프링 등에 쓰인다. "우리는 철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균열을 제어하는 기술을 쌓는 것"이라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 세아의 '선'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정밀 제어의 산물이었다.


방산을 넘어 항공우주로, 특수합금 시장 공략 가속

공장 내 누군가는 여전히 고철을 녹이고, 누군가는 합금을 다듬고 있었다. 이들은 방산을 넘어 항공우주라는 새로운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 세아창원특수강은 올해부터 항공우주 전담 연구팀을 두고, 고내열 니켈합금과 티타늄합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1600도를 버티는 합금이 전투기 엔진과 우주선의 구조물을 지탱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세계 특수합금 시장 자체가 항공우주와 방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추세다. 비즈니스리서치컴퍼니에 따르면 2032년 세계 특수합금 시장 규모는 728억달러(약 10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2023년 343억달러에서 10년 새 두 배 이상 성장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가 안보와 전략 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부각되면서, 항공우주·방산용 소재 공급망은 '동맹국 중심'으로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세아그룹이 특수합금을 미래 먹거리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특수합금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러시아·중국산이 빠진 자리를 한국산 고청정 합금으로 채운다는 구상이다. 세아창원특수강은 지난 2년간 연구개발 투자를 2022년 184억원에서 올해 326억원으로 늘리며, 우주항공용 합금 기술을 고도화했다.


세아창원특수강은 이미 티타늄·니켈계 합금의 초정밀 용해 및 재용해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국내 최초로 수직연주기 기반 블룸 주조 공정을 통해 균질도가 높은 소재를 양산할 수 있는 기반도 다졌다. 목표는 분명하다. 항공우주산업의 핵심 공급망을 책임지는 소재 기업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아창원특수강이 생산한 합금은 머지않아 하늘을 가르는 항공기와 우주로 향하는 발사체의 심장부를 이룰 것"이라며 "글로벌 최고 수준의 고부가가치 특수합금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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