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의 인공지능(AI) 칩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미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2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한 데 이어 중국 수출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업들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젠슨 황 CEO는 28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회사가 만든 AI 칩 블랙웰을 중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트럼프 행정부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황 CEO는 이 논의가 낙관적이라며 수출 성사가 머지않았다는 확신을 나타냈다. 시점과 물량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외신은 중국으로 들어갈 블랙웰이 기존 제품보다 30~50% 낮은 사양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이르면 다음 달 판매가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블랙웰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중국에 수출된 적은 없으며 이번 협의가 사실상 첫 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 업계는 중국향 출하가 현실화되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수주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엔비디아가 쓰는 전체 HBM의 약 90% 가까이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도 좋은 일"이라며 "중국에서 엔비디아 칩에 대한 수요가 늘면 우리 HBM 수주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향 블랙웰은 내부 부속품 역시 저사양으로 맞춰질 것으로 보여 최신형 HBM3E 12단 대신 HBM3E 8단 이하가 쓰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HBM3E 8단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모두 납품하고 있는 제품이다. 블룸버그통신도 지난 1월 "삼성전자가 한 달 전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공급 허가를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업계 관심은 블랙웰뿐 아니라 H20의 중국 판매 재개에도 쏠려 있다. H20은 미국이 고성능 AI 칩의 대중국 수출을 막자, 엔비디아가 규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능을 낮춰 만든 제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판매를 중단했다가 7월에 다시 허용했다. 엔비디아는 그 대가로 중국 수출 매출액의 15%를 세금으로 미국 정부에 내기로 했다. 그러나 수출 허가 절차가 지연된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H20 구매를 중단하라는 조치를 내리면서 생산과 판매가 사실상 멈춰 있는 상태다.
외신과 업계는 이 상황이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황 CEO는 "아직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문을 기대하고 있다"며 "H20은 가격 대비 성능, 비용 효율성, AI 토큰 생성 능력 모두 매우 뛰어나다"고 말했다.
H20 수출이 정상화되면 국내 HBM 업체의 공급량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새로운 경쟁 구도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엔비디아는 삼성전자로부터 HBM3를 공급받아 H20에 탑재해왔지만, 최근에는 성능 강화를 위해 HBM3E 채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기존 삼성전자가 계속 납품할 수도 있고 SK하이닉스가 새로 공급사로 지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의 기회가 다시 열린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급사 입장에서는 엔비디아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최근 다양한 변수가 이어지고 있어 이번 역시 같은 흐름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