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사유를 따라 걷는 여행’ <上>아시아를 누빈 부처의 얼굴

글자 크기
‘붓다의 사유를 따라 걷는 여행’ <上>아시아를 누빈 부처의 얼굴
그리스 조형미 간다라 불상에서 만나다
아시아의 불상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서로 닮아있다. 아름답고 온화한 얼굴이며, 곱슬거리는 머리, 일정한 손 모양, 옷 주름…. 왜 한·중·일은 물론 아시아 불교권의 부처상들이 이처럼 비슷한 상호(相好)를 하고 있을까.

그 답은 불교가 전파된 길과 맞닿아 있다. 기원전 5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부처의 형상은 각 지역의 문화와 융합했지만, 기본적인 얼굴과 자세는 원형을 공유하며 전승됐다.
한중일 불상. 배재호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의 저서 ‘중국 불상의 세계’에 따르면 불상은 당 시대 사람들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 문화적 성취, 불교와 민간신앙의 관계, 그리고 불교가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보여준다. 특히 부처의 상호가 그 시대의 이상적 얼굴로 표현되어 있고, 조각과 장식 또한 당시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불상이 처음 등장한 곳은 인도였다. 붓다 사후 초창기에는 부처를 직접 형상화하지 않고, 법륜(法輪), 보리수, 빈좌(빈 의자) 같은 상징물로 부처의 존재를 나타냈다. 그러나 불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신앙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점차 부처의 형상을 직접 구현한 조각이 필요해졌다. 그 결과 BC 1세기 불상이 출현해 인도 전역으로 확산됐던 것이다.

불상의 전파와 발전에서 쿠샨제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쿠샨은 기원전 1세기 전후(BC 30~50년경)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북부 지역에 걸쳐 성립된 고대 제국으로, 1~3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를 아우르며 크게 번성했다. 쿠샨은 실크로드의 요충을 장악해 동서 교류의 중계자로 활약했으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상인·승려·장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불교의 교리와 예술이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쿠샨제국 안에서도 불상 제작의 중심지는 간다라(Gandh?ra)와 마투라(Mathur?) 지역이다.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접경 지역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불상은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인 인체 표현과 헬레니즘적 이상미를 반영한다. 따라서 간다라 불상에서는 두꺼운 옷 주름, 사실적인 근육 묘사, 부드러운 얼굴 윤곽,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등에서 서양 조형미의 세밀한 감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부처의 모습이 마치 그리스의 신이나 철학자를 연상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다라마투라지역. 반면 마투라 불상은 간다라와 달리 토착적이고 토속적인 조형 감각이 강하게 드러난다. 인도 전통을 기반으로 한 강인한 체구와 상징적 표현이 특징이며, 얼굴은 둥글고 미소가 번지는 듯한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이러한 형상은 전형적인 인도인의 체형과 정신세계를 반영하며, 불교의 보편적 이상을 인도의 문화적 토양 속에 뿌리내린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간다라와 마투라 양식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했지만, 모두 불상 조형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간다라 불상이 국제적이고 혼합적인 문화 융합의 산물이라면, 마투라 불상은 인도의 전통과 종교적 심성이 녹아든 토착적 양식이다. 이후 두 양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불상이 불교 미술의 중심적 주제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파키스탄에서는 ‘간다라’라는 공식 지명이 사라졌다. 고대 간다라 지역은 오늘날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Khyber Pakhtunkhwa) 주와 펀자브 북서부 일대에 해당하지만,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면서 ‘간다라’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적 유적지나 박물관, 고고학 연구에서만 사용된다.

반면 마투라는 인도 북부 갠지스 강 유역의 고도(古都)로, 오늘날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실제 도시 이름으로 남아 있다. 마투라는 고대 인도 조각 양식이 꽃핀 중심지이자, 불교와 힌두교 모두의 성지로서의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쿠샨제국에서는 간다라와 마투라 양식이 결합한 도상도 제작됐는데,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해져 동아시아 불상의 머리 모양, 앉은 자세, 손 모양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졌다. 한국에는 삼국시대 후반 6~7세기경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간다라불상, 마투라불상. 불상은 이렇게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쳤으며, 동아시아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머리 모양(소라 모양의 육계), 앉은 자세(결가부좌), 옷의 형태(승복이 몸을 감싸는 주름), 손 모양(선정인·설법인·시무외인·항마촉지인 등)이 인도 불상의 원형을 충실히 계승하게 된 것이다. 불상의 손 모양은 대체로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이 앞을 향하게 하고, 손가락을 곧게 펴서 들어 올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두려움이 없게 하다’는 뜻이다.

다만 불상은 각 나라의 미적 감각과 종교적 해석이 더해지면서 미묘한 차이가 생겼다. 중국은 웅대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강조했고, 한국은 단아하면서도 사색적인 표정을 담았으며, 일본은 온화하고 세련된 조형미로 발전시켰다.

불상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가장 기본은 깨달음을 완전히 얻은 부처상이고, 다음으로 깨달음을 얻기 전 중생 구제를 위해 수행 중인 보살상, 그리고 미래에 오는 미륵불(彌勒佛)이 있다. 부처상 중에도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있는데, 석가모니불은 머리 위에 육계(肉?)라 불리는 혹처럼 솟은 부분을 가진 역사적 실존부처이고, 나머지 불상은 상징적·법신적 부처다.

보살상도 4가지로 분류되는데,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듣고 구제하는 보살이고, 문수보살은 지혜가 뛰어난 보살, 보현보살은 널리 선을 행하는 보살, 지장보살은 중생의 죄업을 감싸는 보살이다. 보통 법당에 모셔진 삼존불 중에 가운데가 부처상(본존불)이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한다.

미륵불은 산스크리트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인데, 중국에서 미륵으로 음역했다. 미륵불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모니 이후, 장차 나타나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대표적 미륵불은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銀津彌勒)이다. 고려시대인 968년경에 조성됐으며, 손 모양은 연꽃 가지를 들고 있는 형태인데, 이는 자비와 평화를 상징한다. 은진미륵은 높이 18.12m, 둘레 9.9m로 국내 최대 석불이다. 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관촉사가 있는 곳의 옛 지명이 은진면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논산시 관촉동이다. 미륵불 역시 인도에서 처음 제작됐다. 미륵불이 존재하는 국가는 한국 외에도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4~5개국 정도로, 불교권에서 널리 소중하게 모셔졌다.

사람들은 거대한 불상이나 정교하게 빚어진 국보급 불상을 마주할 때, 인간의 손을 넘어선 완전함에 감탄하며 경외심을 느낀다. 다음으로 부드러운 표정과 균형 잡힌 자세, 잔잔한 미소를 바라보면 마음속 깊이 안정과 평온을 찾는다. 그러면서 인생과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유와 성찰의 시간도 갖는다. 오늘도 아시아의 불상들은 찾는 이들에게 말없이 마음의 울림과 깨달음을 건네고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