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가 심화함에 따라 치매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치매환자는 약 105만명이며, 2030년 142만명(10.9%), 2050년엔 315만명(16.6%)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빠듯한 현실 속 이에 대한 대비는 쉽지 않다.
치매는 단순히 질병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의사능력을 상실하게 해 그가 가진 재산에 대한 법적 행위능력 자체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문제를 초래한다. 문제는 환자가 의사능력을 상실하는 순간부터 사실상 재산관리가 불가능해지고 이른바 머니동결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치매환자의 재산이 외부로 무분별하게 유출되거나, 가족 간 분쟁사기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마련된 보호장치다. 현행법상 가족이라도 함부로 예금 인출이나 부동산 매각을 할 수 없고 필요한 경우 별도의 후견절차를 거쳐야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필자의 지인 중 한 분인 A씨는 지방에서 제조업 관련 개인사업체를 운영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외국인 아내를 맞아 자녀 3명을 뒀으나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력과 인지능력 자체가 떨어져 은행 입출금 자체도 실행하기 어려워졌다. 이를 악용해 평소 친분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계좌 비밀번호를 파악해 돈을 인출하려 했고 계좌가 잠기게 돼 본인 치료비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행 제도상 치매 환자의 재산관리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년후견제도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도는 법원의 심판을 통해 개시되며, 후견인의 선임과 감독 절차가 요구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환자의 법률행위를 대신 수행하는 공적제도인데, 절차가 복잡하고 개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제도가 신탁이다. 이는 본인이 판단 능력을 상실하기 전 완전한 의사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신탁사를 수탁자로 지정하고 재산의 운영방식과 사용목적을 미리 확정해두는 방식이다. 법률적으로 이 제도는 사전적 재산관리 수단으로 기능한다. 향후 행위능력 상실 시점에도 계약 당시의 의사표시가 유효하게 존속돼 신탁약정에 근거해 재산이 관리·처분되는 구조다.
사전에 신탁으로 나의 돈을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사용목적을 분명히 설정해 놓는다면 자산동결 위험성을 지칭하는 치매머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아파도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 되고 가족 간 불화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나의 계좌에서 나의 병원비 등을 지출할 목적으로 수령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여 이슈도 발생하지 않는다. 뇌경색 등의 급성 중증질환 상태에서도 내 자금을 원활히 사용할 수 있다.
신탁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치매가 발병하더라도 생계·의료비 지출이 중단되지 않아 자산운용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둘째, 후견 신청 등 복잡한 법적 절차를 줄이고 돌봄에 집중할 수 있어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셋째, 본인이 미리 원하는 자산배분 방식과 사용 용도를 정해둬 주체적 결정을 존중받을 수 있다. 넷째, 상속인 간 갈등이나 가족 간 재산 사용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은 건강할 때부터 재산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치매와 같은 상황에 대비할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생에 걸쳐 소중히 일군 자산을 꼭 필요한 순간에 자녀나 배우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활용할 수 있으며, 설사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나의 뜻에 따라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상속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종합적인 해답을 찾아 미리 설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장주리 교보생명 종합자산관리팀 세무사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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