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닌투언 원자력 발전소 프로젝트 조감도 [사진=베트남 통신사]베트남 원전 사업을 둘러싼 국제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일본이 완공 시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일본 중심으로 짜였던 닌투언 원전 사업의 판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 원전 시장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원전의 ‘글로벌 사우스’ 진출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난항에 흔들린 닌투언 2호기…판 다시 짜는 베트남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베트남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둘러싼 협상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만 한국이 본격적인 협상 단계에 돌입한 것은 아니며, 현재로서는 전반적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베트남은 과거 원전 도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2009년 러시아·일본과 협력해 남부 닌투언성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하고 1호기 사업자로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을 선정했지만, 재정 부담과 정책 기조 변화 등으로 사업은 결국 중단됐다.
이후 장기간 원전 도입을 유보해왔던 베트남은 2024년 들어 전력난이 심화되자 원전 개발 재개를 공식화했다. 최대 6.4GW(기가와트) 용량의 원전을 2030~2035년 가동하는 것이 핵심 구상이다. 이를 위해 닌투언성에 원전 2기를 건설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이 가운데 닌투언 1호기 사업은 러시아가 사실상 주도권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2024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사업 추진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닌투언 2호기 사업의 경우 원전 부지는 조사와 승인 절차를 모두 마쳐 본격적인 추진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으며, 그간 일본이 유력 주자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일본 측이 완공 시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토 나오키 주베트남 일본 대사는 최근 “완공 기한인 2035년을 고려할 때 일본은 닌투언 2호기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지난 7일 회의에서 일본과의 닌투언 2호기 사업 협력 종료를 공식 통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베트남 원전 사업의 구도가 다시 짜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 원전 사업은 정부 간 협약(IGA)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베트남 정부가 자국 원전에 관심 있는 국가들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한 뒤 내부 검토를 거쳐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하고, 해당 국가와 IGA를 체결하는 방식이다. IGA 체결 자체가 우선 협상 대상자 지위를 의미하며, 이후 타당성 조사와 세부 사업 협상이 이어진다.
최근 우리나라가 수주에 성공한 체코 원전과 달리 경쟁입찰 방식이 아닌 만큼, 국가 차원의 신뢰도와 건설 역량이 핵심 평가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체코·UAE 성과 앞세운 한국, 글로벌 사우스 교두보 노린다
이러한 점에서 업계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경험이 베트남 협상에서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는 신속한 공사 일정과 경제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경쟁사들을 제쳤다.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온 타임 온 버짓’ 역량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한 1000MW급 한국형 원전 APR1000은 건설 단가가 약 9조원으로, 경쟁국이었던 프랑스전력공사(EDF)의 EPR1200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UAE 바라카 원전 4기를 적기에 건설한 실적 역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반면 EDF는 핀란드와 영국에서 원전 공기 지연으로 공사비가 크게 불어난 전례가 있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약 논란도 베트남 진출에는 직접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한전과 한수원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중동 시장에 진출하고, 북미와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에는 단독으로 원전 수주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로 인해 주요 시장을 내줬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원전 사업이 성사될 경우 한국 원전 산업이 ‘글로벌 사우스’로 확장하는 전략적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베트남은 장기적인 원전 확대 계획을 가진 국가인 만큼 첫 수주가 이뤄질 경우 후속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며 “체코에 이어 베트남까지 확보한다면 한국 원전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 단계 도약하고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최예지 기자 ruizhi@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