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대만에 관세를 깎아주는 대신 대규모 대미 투자를 이끌어낸 것처럼 한국에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대만 대비 6분의 1에 불과하고 반도체 산업 구조도 달라 협상에 난관이 예상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액을 합치면 400만 달러 규모로, 지난 15일(현지시간) 대만 반도체·기술 기업들이 미국에 직접 투자를 약속한 2500억 달러 대비 6분의 1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지역에 3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두 회사의 대미 투자를 바탕으로 반도체 관세에 있어서 '최혜국 대우(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기로 약속받은 바 있다.
대만이 약속한 2500억 달러는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투자하는 360조원과 비슷한 금액이다. 대만 정부는 이와 별도로 미국 반도체 공급망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2500억 달러 규모의 신용 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관세 협상 타결 당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으나 조선업 몫인 1500억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에만 해당되는 금액이 아니다. 기업 직접 투자나 정부 간접 투자 모두 현재로선 대만에 비해 크게 적다. 미국이 대만 수준의 투자 압박 청구서를 내민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휘청일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구조상 대만보다 미국 현지 공장 증설에 불리한 점도 고민거리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심 기업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중심인 대만 TSMC처럼 미국 현지 생산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
TSMC는 설계는 하지 않고 생산만 담당해 어디에 공장을 짓든 반도체 원천 기술 누출 우려가 작고 고객사 대부분이 이미 미국 빅테크 기업이어서 발 빠른 고객사 대응 측면에서 나쁠 게 없다는 평가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낸드플래시, HBM,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까지 생산하고 있어 수율 안정성, 고급 인력 확보, 최첨단 장비·클린룸 인프라 구축 등 고려 사항이 많다. 생산 거점 이동으로 인한 리스크가 파운드리보다 훨씬 큰 셈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대만과 약속한 투자 규모가 하나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 만큼 커서 향후 미국과 협상 시 치밀한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추가 투자가 되더라도) 전제 조건을 달아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파트너십이 돼야 한다"며 "기술 유출 같은 문제 없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조성준 기자 critic@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