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마포구 대흥동 태영아파트 아파트 단지 전경. 양다훈 기자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던 초고가 신고가 행진에 변화가 감지됐다. 자산가들의 전유물이었던 30억 초과 단지들의 기세는 한풀 꺾인 반면 대출 규제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9억에서 15억’ 사이 중고가 단지들이 새로운 신고가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19일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2025년 실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이 같은 시장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의 신고가 무게중심이 시간이 갈수록 아래로 이동한 것이다. 1분기만 해도 30억 초과 초고가 아파트의 신고가 비중은 3.7%였으나 4분기에는 2.4%로 쪼그라들었다. 그 빈자리를 치고 올라온 것은 12억 초과 15억 이하 구간이다. 이 구간의 신고가 비중은 1분기 3.2%에서 4분기 5.2%까지 치솟으며 서울 전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시장의 열기는 통계 밖 실거래가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지난달인 2025년 12월 성동구 상왕십리동 센트라스 전용 84㎡가 24억을 돌파하며 시장을 놀라게 하더니 이제는 소형 평수인 전용 59㎡마저 16억 벽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역시 지난달 거래된 광진구 광장동 청구아파트 전용 59㎡는 16억 8000만원에 신고가를 찍었고 마포구 염리동 염리삼성래미안 전용 59㎡도 16억 7000만원에 거래되며 뒤를 쫓았다. 성동구 행당동 행당한진타운 전용 59㎡ 역시 16억 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결국 ‘어차피 못 살 초고가’는 포기하고 ‘내 대출과 자금력으로 감당 가능한 최상급지’인 15억 전후 구간으로 수요가 쏠리는 것이다. 억눌린 매수세가 이 구간에 집중되면서 해당 가격대 아파트들이 줄줄이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이 가격을 낮춰 잡는 사이 경기도는 오히려 키 맞추기에 나섰다. 1분기까지만 해도 6억 이하 저가 거래가 전체의 66.7%를 차지했던 경기도는 하반기 들어 9억에서 15억 사이 거래와 신고가가 폭발했다. 서울의 미친 집값을 견디다 못한 수요자들이 경기도의 신축이나 역세권 대단지로 대거 이동한 결과다. 실제로 경기도의 9억에서 12억대 거래량은 1분기 1874건에서 4분기 3192건으로 70%나 폭증했다. 판교나 분당 등 입지 경쟁력이 검증된 곳을 중심으로 과거 고점을 경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라는 규제가 시행됐음에도 시장의 체감 온도는 식지 않고 있다. 더 늦으면 영원히 서울에 발을 붙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규제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달 하순 추가 부동산 정책 발표가 예정되어 있지만 규제의 역설이 증명하듯 수요자들은 이미 규제에 적응해 또 다른 틈새를 찾고 있다. 내가 가진 자산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이 2026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