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배우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성과를 거둔 배우들이 카메라 앞을 넘어 연출가로 잇따라 이동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활약은 연기가 연출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것은 물론 배우의 커리어가 한 방향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진=쇼박스 연기라는 익숙한 영역을 넘어 연출로 발을 넓히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오랜 시간 쌓아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연출자로 변신한 이들은 더 이상 연기가 아닌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적 색깔을 녹여내고 있다.
◆하정우·구교환, 연기 이어 제작·연출 꾸준한 도전
대표적으로 하정우는 연기 외에도 연출과 제작 영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다재다능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로 첫 연출에 나서며 배우 출신 감독으로 변신한 하정우는 2015년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허삼관을 직접 연출했다. 특히 허삼관에서 연출과 함께 주연 배우까지 도맡으며 신선한 시도로 주목 받았다. 2008년 영화 추격자로 상업영화의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한 하정우의 잇따른 연출 시도는 이례적이었다.
이후 한동안 영화 싱글라이더·백두산·클로젯·리바운드 등 연출 대신 제작에 주로 참여한 그는 지난해 자신이 연출한 로비·윗집 사람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연출자로서 행보에 다시 속도를 냈다. 배우로서 현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인물의 감정선과 장면의 리듬을 섬세하게 살리는 강점으로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그동안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정우는 “배우가 되는 것도 꿈이었지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사랑한다. 그런 필름 메이커가 되고 싶다”며 “좋은 기회로 배우로서 자리를 잡았으니 다음 목표는 감독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교환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구교환은 독립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이자 감독이다. 상업영화에서 주목받기 이전부터 독립영화에서 연기·연출·각본을 넘나들며 활동해 왔다. 특정 장르나 인물 유형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캐릭터 해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독립영화계에서 다재다능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평가된다.
2011년 단편영화 거북이들로 연출을 시작한 후 2014년에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창의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올해에는 코미디언 장도연이 주연을 맡고 연인 이옥섭 감독과 공동 연출한 너의 나라를 선보일 예정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꾸준히 메가폰을 잡고 있다.
◆최정상 배우들도 메가폰…이정재, 상업적 성과까지
김윤석·문소리·정우성 등도 배우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섰지만 만족하지 않고 감독 도전장을 내민 바 있다. 김윤석은 “연극 연출을 해봐서 늘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며 2019년 영화 미성년으로 처음 메가폰을 잡았다. 문소리는 2017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감독·각본·주연을 모두 맡아 여성 연기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호평받았다. 정우성은 데뷔 30년 만인 2023년 영화 보호자에서 주연과 더불어 처음으로 감독에 도전했다.
이정재 사진=AP/뉴시스 상업성이 짙은 작품이 아니었던 탓에 모두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예외도 있다. 이정재는 2022년 1980년대 제5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첩보 영화 헌트로 데뷔 29년 만에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했다.
연출·각본·제작·주연까지 모두 맡은 이 영화는 430만 관객을 모으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배우 출신 감독 데뷔작 흥행 기록을 세웠다. 처음엔 배우로서 시나리오에 매료돼 영화화 판권까지 샀지만 각본에 참여한 감독들이 잇따라 하차하자 이정재가 결국 직접 4년에 걸쳐 각색했다. 영화는 국내뿐 아니라 칸 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되고 해외 144개국에 선판매되는 글로벌 성과를 거뒀다.
오랜 시간 다양한 장르와 감독 아래에서 쌓아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서사 구조와 인물 간의 긴장 관계를 직접 설계하며 작품을 이끌었다는 점이 호평받았다. 첫 연출작이 평단과 대중 모두 사로잡은 셈이다. 데뷔작이었음에도 이정재는 1980년대의 고증을 위해 소품부터 사격 자세까지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자연스럽게 차기작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정재는 두 번째 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