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엔트로피(Entropy)가 높아진 세계, 2026년의 결정적 질문

글자 크기
[곽재원의 Now&Future]  엔트로피(Entropy)가 높아진 세계, 2026년의 결정적 질문
곽재원 논설위원장[곽재원 논설위원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세계를 파괴하지 마라.”
이처럼 직설적이고도 엄중한 문장이 일본의 대표적 경제지 사설에 실렸다. 2026년 1월 18일자 일본경제신문 사설이다. 외교적 수사와 절제를 중시해온 일본 언론의 문법을 감안하면, 이 표현은 이례적일 정도로 강경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사설이 특정 정책에 대한 일시적 비판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 질서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향한 경고라는 점이다.
사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1년 동안 전후 국제질서를 떠받쳐온 핵심 기둥들이 연쇄적으로 훼손됐다고 진단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무시한 고관세 정책은 자유무역 질서를 흔들었고, 동맹국과의 협력 관계는 거래 대상으로 전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의 신뢰를 약화시켰으며,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병합에 대한 집착은 동맹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문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일방적 군사 행동, 다자 국제기구 탈퇴로 인한 기후변화·빈곤·공중보건 협력의 후퇴,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비롯한 행정 기구 해체로 인한 전문성 상실도 사설이 열거한 문제들이다. 언론 자유에 대한 압박, 이견 배제와 정적 제거 시도, 연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일본경제신문은 이를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태”라고 규정했다.
사설의 결론은 분명하다. 이러한 흐름이 남은 임기 동안 지속된다면 세계는 바람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며,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은 미국이 다시 국제 협력의 궤도로 돌아오도록 집단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을 그 대안적 나침반으로 제시한 대목 역시 인상적이다.
일본경제신문의 이 사설은 단순한 외교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가 관리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비용 구조, 다시 말해 엔트로피가 급격히 높아진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다.
엔트로피(Entropy)는 원래 물리학 개념이다. 시스템이 얼마나 무질서해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일상 언어로 풀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정리된 방에서는 물건 하나를 찾는 데 큰 노력이 들지 않지만, 어질러진 방에서는 같은 물건을 찾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 국제질서도 마찬가지다.
규칙이 분명하고, 합의가 존중되며, 약속이 지켜지는 세계에서는 갈등이 발생해도 관리 비용이 비교적 낮다. 그러나 규칙이 무시되고, 합의가 언제든 뒤집히며, 힘이 우선하는 환경이 되면 각국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군비를 쌓고, 더 많은 외교 자원을 투입하며, 더 많은 보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것이 국제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높아진 상태다.
지금 세계는 이미 여러 개의 위기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불안,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 변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까지 겹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질서마저 불안정해지면, 작은 충격도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일본경제신문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더 이상 세계를 파괴하지 말라”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특정 발언이나 정책 하나가 아니라, 세계 질서의 마찰계수를 급격히 높이는 정치 방식이다.
트럼프 정치의 특징은 다자 질서를 경시하고, 동맹을 거래 대상으로 바라보며, 규범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는 강경하고 결단력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신뢰를 소모하고,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며, 결국 세계 전체의 엔트로피를 끌어올린다. 그 비용은 각국의 재정 부담, 기업의 투자 위축, 시민들의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중요한 점은 세계가 더 이상 이런 엔트로피 상승을 감내할 체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 냉전 시기에는 갈등이 존재했지만 질서는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기술·경제·안보·환경이 서로 얽힌 고차 방정식 위에 놓여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시스템은 빠르게 임계점에 접근한다.
그래서 2026년 세계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엔트로피를 낮출 것인가. 이는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현실적 생존의 문제다. 엔트로피를 낮춘다는 것은 규칙을 복원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갈등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되돌리는 l일이다. 힘의 과시보다 제도의 신뢰를, 즉흥적 결정보다 지속 가능한 질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미국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일본, 유럽, 한국을 포함한 선진 및 중견국들,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어느 나라든 엔트로피를 증폭시키는 정치에 편승할 것인지, 아니면 비용이 들더라도 질서를 유지·복원하는 길을 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혼란의 시대마다 두 유형의 지도자가 등장했다. 엔트로피를 키워 순간적 지지를 얻는 지도자와, 불편한 선택을 감수하며 질서를 재구성한 지도자다. 전자는 박수를 받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후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시스템을 지켜냈다. 지금 세계는 다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일본경제신문의 사설은 그 갈림길 앞에서 울린 경고음이다. 2026년은 더 이상 혼란을 정치적 개성이나 스타일로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묻고 있다.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가가 아니라, 누가 엔트로피를 관리하고 낮출 수 있는가를.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세계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1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아주경제=곽재원 논설위원장 kjwon54@gmail.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