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챗지피티 생성]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위원회' 구상이 회원국에 거액의 기부를 요구하고 의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로 드러나면서 유엔을 대체하거나 경쟁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 구성될 평화위원회 상임위원 자리를 원하는 국가들에 최소 10억 달러(1조4736억원)의 기부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설립안 초안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초대 의장을 맡아 회원국 선정과 주요 결정에 대한 승인권을 갖는다.
회원국 선정은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지며, 각 회원국은 한 표씩 행사할 수 있지만 모든 결정은 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됐다. 또 "각 회원국은 이 헌장 발효일부터 3년을 초과하지 않는 임기로 재임하며 의장의 재임이 있을 경우 연임이 가능하다. 단, 헌장 발효 후 첫 해에 평화위원회에 현금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회원국은 3년 임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정관에는 이 기구가 분쟁의 영향을 받거나 위협받는 지역에서 안정을 증진하고 신뢰할 수 있고 합법적인 통치를 회복하며 지속적인 평화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라고 적혀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오랫동안 비판해 온 유엔에 대한 대안 또는 경쟁 기구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총리와 마크 카니 부총리를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을 가자지구 평화위원회 위원으로 초청했다. 이 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수립한 평화위원회 산하에 설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베냐민 네타냐후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을 받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계획의 세부 사항이 이스라엘과 협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러 유럽 국가들도 초청을 받았지만 반발 기류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초안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자금을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위원회 참여 가능성이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는 이에 반대하고 있으며 맞서기 위한 공동 대응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한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가입 자체는 무료지만 10억 달러의 회비를 내면 영구회원 자격이 부여된다고 확인했다. 그는 모금된 자금이 가자지구 재건이라는 위원회의 임무 수행에 직접 사용될 것이며 거의 전액이 목적 사업에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위원회는 최소 연 1회 투표 회의를 열고 위원장이 판단할 경우 추가 회의도 소집할 수 있다는 회의 안건은 위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평화위원회의 활동 범위가 가자지구를 넘어 글로벌 분쟁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FT가 입수한 헌장 사본에는 가자지구를 특정하지 않고 '더 민첩하고 효과적인 국제 평화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담겼다.
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 호주,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연합(EU), 이집트, 터키에도 가입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금요일 백악관은 마코 루비오,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토니 블레어 등이 포함된 첫 번째 집행위원회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유엔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으며 이달 초에도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31개 유엔 산하 기구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이번 평화위원회 구상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유엔을 우회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주경제=이은별 기자 star@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