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장관이 원화가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자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급락세로 돌아서 1460원선으로 떨어졌다. 미 재무부 수장의 구두개입성 발언은 우리 외환당국이 직접적인 시장개입에 재차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며 최근 과열 장세를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달러 실수요 매수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순매도 흐름과 수출입업체의 네고 물량 등으로 당분간 원화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수출기업과 개인들의 불법적인 달러 유출 행위를 집중 단속하는 범정부 대응반을 출범해 원화값 하락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15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전날 밤 최근 원화가치 하락에 대해 "한국의 강력한 경제 기초 여건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외환시장에서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근 원화 약세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 우려 보다는 시장 변동성에 따른 측면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 분야에서의 한국의 강력한 경제 성과가 한국을 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적인 파트너로 만든다"고 재확인했다.
베선트 장관의 이번 발언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만나 최근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에 대해 논의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양자 면담은 같은 날 열린 주요 7개국(G7) 핵심광물 재무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뤄졌다.
미 재무장관이 상대국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 2024년 4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재무장관이 공동으로 환율 대응에 나선 적이 있었으나, 미국 주도의 구두개입은 아니었다. 과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시절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의 엔화 지원을 위한 개입 요청에 옐런 장관은 "미국은 시장 원리에 따른 환율을 선호한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미국의 상대국 통화가치 개입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가치 하락을 유도하거나, 환율 조작 강력 대응과 같은 개입 비판 중심이었다.
국내 외환당국이 환율 일방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직간접적인 개입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우리 외환당국의 원화 약세 방어 의지를 지원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미 간 관세협상 결과에 따라 올해부터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과도한 원화 가치 하락이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미 재무장관의 원화가치 지지 발언 이후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대비 12.5내린 1465.0원에 장을 시작했다. 새해들어 전날까지 열흘째 상승 흐름을 멈추지 않던 원·달러 환율은 베선트 장관의 발언 직후 야간장에서 10원 가까이 하락했다. 전일 주간 종가(1477.5원)와 비교하면 하루도 안돼 13.5원이 떨어진 것이다.
당국은 원화값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며 시장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이날 재정경제부는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국세청, 관세청 등 6개 기관으로 구성된 '범정부 불법 외환거래 대응반'을 가동해 달러 유출 일변도인 수급 관리에 나선다.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외환검사에 이어 개인들의 불법적 외환거래 행위를 색출해 비정상적으로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매달 국장 주재로 열리는 회의에서 협업과제를 선정해 기획단속 등에 나서게 된다. 국경간 거래대금을 외국환은행을 통하지 않고 지급·수령하는 소위 환치기와 수출입 가격 조작, 허위신고 등을 통한 해외자산 도피, 외환거래 절차를 악용한 역외탈세와 자금세탁 등이 집중 조사 대상에 오른다. 정부는 과거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환율 급등기에도 범정부 대응반을 한시적으로 운영한 바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무역거래로 위장하거나 환치기 등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최근 몇 년 새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불법 외환거래 단속 건수는 지난해(11월 말 기준) 1281건으로 전년(1082건) 대비 18% 이상 급증했다.
정부가 기업과 개인에 대한 고강도 조사에 나선 것은 고환율이 본격화한 지난해 불법 외환거래액이 급증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 해외유출 급증이 국내 시장에 대한 비관과 기업들의 대미 투자 등 구조적 현상을 보이는 만큼 단속만은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 촉진, 국민연금 환헤지, 국내복귀 서학개미 양도소득세 감면, 외환건전성 부담금 면제 등의 외환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은 한 달도 가지 못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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