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정부와의 회담을 전면 취소하고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독려하면서 ‘포스트 하메네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장 미국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정부 기관을 점령하라”고 썼다. 이어 “나는 (이란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해를 멈출 때까지 이란 당국자들과의 모든 회의를 취소했다”며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들끓는 이란 민심… 이라크선 ‘반미’ 맞불 이란 시민들이 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집기 등을 불태우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이란과 같은 중동 내 시아파 세력의 반미 감정도 커지면서, 13일 이라크 바스라의 이란영사관 앞에서는 이라크 시아파 무장단체 지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태우며 항의했다. 테헤란·바스라=AP·로이터연합뉴스 군사 옵션과 관련해서도 더욱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가 시위대를 교수형에 처할 경우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 예로 최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지난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기습 공습 등을 거론했다. 이란 신정체제 붕괴 이후를 염두에 둔 움직임도 포착됐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가 지난 주말 미국에 망명 중인 팔레비 전 왕세자와 비공개로 접촉해 이란 시위 상황과 정권 붕괴 이후 구상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팔레비는 이란의 체제 전환기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워싱턴에서도 그가 체제 전환 국면의 잠정적 대화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유럽은 이란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란 신정체제 보위 조직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영국은 이란의 석유, 에너지, 핵, 금융 체계의 핵심 주체들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추가 제재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당장 크지 않다는 게 외교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문제대학원(SAIS)의 발리 나스르 교수는 로이터에 “이슬람 공화국 붕괴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시위가 훨씬 더 오래 이어져야 하고, 보안군을 포함한 국가 조직 일부가 내부에서 이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이란 정권이 수십 년간 내부 결속을 다졌고, 2009년 이후 다섯 차례의 대규모 시위를 겪고도 체제를 유지해 왔다”며 “현재 시위가 정통성을 크게 흔들고는 있지만 당장 몰락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봤다.
미국의 군사 개입 옵션도 제약이 많다는 분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동에 미 해군 항공모함이 단 한 척도 배치돼 있지 않고, 과거 중동에 전진 배치됐던 미군 주요 방어 시스템 상당수가 카리브해와 한국 등으로 이동해 선택지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외부 공격이 오히려 반미 감정과 정권 내부 결속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란 내부 상황은 시시각각 악화하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시위 17일 동안 사망자가 2571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노르웨이 기반 단체 이란인권(IHR)은 시위 참가자 최소 734명이 사망했다면서 “미확인 정보 기준, 사망자가 최대 6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지난 8∼9일 이틀 동안 이란 현대사에서 가장 대규모 학살이 자행돼 최소 1만2000명이 죽었다”면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