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정치사회부 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제명은 한 개인의 정치적 퇴장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오늘의 한국 정치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를 되묻는 하나의 징표다. 정치의 이름으로 벌어졌으되, 정작 정치의 기본은 실종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형사 처벌도 없고, 법원의 판단도 없으며, 당 내부 익명 게시판 글을 둘러싼 논란임에도 제명이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는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며, 시대 인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정치는 도덕의 경쟁도 있어야 하지만 판단의 예술이 이보다 더 앞서야 한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 지를 아는 일이다. 지금 싸워야 할 전투와, 지금 피해야 할 전쟁을 구분하는 능력, 그것이 정치인의 첫 번째 자질이다. 이 판단력이 없을 때, 정치는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다.
한동훈은 정치 초년생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배워야 했다. 사람을 읽고, 시간을 읽고, 침묵의 무게를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정치를 가르치려 들었다. 옳음을 앞세웠고, 원칙을 외쳤으며, 스스로를 심판자의 위치에 놓았다. 정치의 세계에서 이는 가장 위험한 태도다. 정치인은 교사가 아니라 조정자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통찰력은 더욱 중요하다. 통찰력은 지식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힘이다. 이 싸움이 가치의 문제인지, 권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공포의 문제인 지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한동훈 제명의 본질은 윤리도, 게시판도 아니다. 보수 정치 내부에 누적된 불안과 통제 불능에 대한 공포다. 이 공포가 한 개인에게 투사되었고, 제명이라는 형태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치에서 희생양은 순간의 결속을 만들 수는 있어도, 미래를 만들 지는 못한다. 오히려 상처를 남기고, 분열을 고착화할 뿐이다. 역사는 언제나 이를 증명해왔다. 이 사건이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일이다. 국민을 훈계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불안을 관리하는 자리다. 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완벽한 선택은 없고, 덜 나쁜 선택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타협과 인내로 길을 찾는 일, 그것이 정치였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이 인내가 부족하고, 이 겸손이 사라졌다. 대신 확신과 분노, 즉각적 판단이 정치 판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동훈의 제명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판단력과 통찰력이 없는 정치가 어떤 결말을 맞는 지를, 그리고 이 시대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격이 무엇인 지를 물어봐야 한다.
정치는 옳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틀릴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판단력은 타이밍을 아는 것이고, 통찰력은 싸움의 본질을 읽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정치는, 어떤 명분으로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아주경제=김두일 선임기자 dikim@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