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바야흐로 ‘콘텐츠’가 곧 ‘수출 보증수표’가 된 시대다.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K-콘텐츠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화려한 수상 소식보다 산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작품 속 아이돌 그룹이 땀을 뻘뻘 흘리며 즐기던 ‘붉은 소스’와 ‘컵라면’이다.
과거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호기심의 영역이었다면, ‘케데헌’이 보여준 K-푸드는 실제 소비 트렌드와 주가까지 뒤흔드는 강력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서울이 공식 협찬과 바이럴의 경계를 허물며 글로벌 유통망을 흔드는 ‘케데헌 효과’를 심층 분석했다.
◇ 젖병처럼 쥔 붉은 소스…‘스파이시 챌린지’가 쏘아 올린 공
이번 ‘케데헌 열풍’의 중심에는 작품 속 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즈’가 등장하는 ‘스파이시 챌린지’ 장면이 있다.
극 중 멤버들은 매운맛을 참아내는 게임을 진행하는데, 특히 막내 멤버인 ‘베이비 사자’가 붉은 소스 병을 마치 젖병처럼 두 손으로 꼭 쥐고 매운맛을 즐기는 모습이 등장해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 이는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유행하는 실제 ‘불닭 챌린지’를 오마주한 것으로, 글로벌 팬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안기며 ‘따라 하기(Copycat)’ 열풍을 일으켰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1020 세대에게 ‘케데헌’ 속 장면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동경하는 챌린지 문화의 연장선”이라며 “영화가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하자마자 관련 소스와 라면을 찾는 수요가 빗발친 이유”라고 분석했다.
◇ ‘공식’ 농심 vs ‘바이럴’ 삼양…희비 엇갈린 ‘케데헌 효과’
증권가에서는 이번 현상을 ‘케데헌 효과’라 명명하며, K-라면의 양대 산맥인 농심과 삼양식품의 서로 다른 수혜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농심은 작품 속에 패러디 브랜드인 ‘동심’으로 등장하는 컵라면을 통해 공식적인 마케팅 효과를 노렸다. 캐릭터와의 콜라보 제품을 발 빠르게 출시하며 안정적인 인지도 상승을 꾀한 전략이다.
반면, 삼양식품은 ‘뜻밖의 대박’을 터뜨렸다. 별도의 공식 스폰서십 계약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된 ‘베이비 사자’의 소스통이 ‘불닭소스’를 연상시키며 전 세계적인 바이럴을 탔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공개 직후 삼양식품의 주가는 해외 인지도 상승과 맞물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농심이 정공법으로 길을 닦았다면, 삼양은 콘텐츠가 만들어낸 결정적인 ‘밈(Meme)’을 타고 날아오른 형국”이라며 “두 기업 모두 ‘케데헌’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포지티브섬(Positive-sum)’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 화면엔 없었는데 불티나게 팔린다…‘김치’의 기막힌 반전
라면과 소스가 직접적인 수혜를 입었다면, ‘김치’는 이른바 ‘낙수 효과’의 주인공이다. 작품 내에 김밥, 떡볶이 등 다양한 K-푸드가 등장하지만, 김치가 직접적으로 부각되는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의 폭발적인 인기가 김치 매출로 전이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콘텐츠가 유발한 호기심이 ‘문화적 학습’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팬들은 ‘스파이시 챌린지’의 매운맛을 중화시키거나, ‘동심’ 컵라면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라면에는 김치가 필수(Must-have)”라는 공식을 체득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는 완벽한 ‘보완재(Complementary good)의 록인(Lock-in) 효과’다. 대상 종가집, CJ제일제당 등 김치 제조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운 라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김치’ 등 페어링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보는 것으론 부족해”… ‘관념’을 ‘체험’으로 바꾸다
이처럼 K-콘텐츠의 흥행이 즉각적인 식품 매출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전문가는 이를 ‘체험 욕구의 전이’로 설명한다.
성신여대 김정섭 교수(문화산업예술대학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문화 콘텐츠 자체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식문화는 소비자가 직접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체험’의 영역”이라며 “K-콘텐츠가 글로벌 주류 시장에 안착함에 따라,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문화를 직접 향유하려는 욕구가 소비재 수출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K-컬처가 대중문화 영역에서 주류에 편입되면서, 소비재 수출은 콘텐츠 수출 효과의 2배 이상을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특히 K-푸드는 전 세계적인 건강식(Natural Food) 트렌드와 맞물려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지금 세계는 한국이 만든 ‘악귀 사냥꾼’에 열광하고, 그들이 먹는 ‘라면’에 탐닉하고 있다. 골든글로브가 쏘아 올린 공은 이제 식품 업계의 코트로 넘어왔다. ‘케데헌’과 함께 비상한 라면과 김치가 일시적인 돌풍을 넘어, 글로벌 식탁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