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1천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6.01.13[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MBK파트너스는 2005년 창립 이래 홈플러스를 포함한 모든 일들에 한결같이 'virtue'를 가지고 임해왔다. "
김병주 MBK 회장은 지난해 7월30일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MBK장학재단에 이런 글을 올렸다. 홈플러스 문제로 사방에서 공격을 받던 때다. 여기서 'virtue'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말로 선(善) 혹은 미덕(美德)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에서 홈플러스 문제에 대한 김 회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홈플러스 사태로 법원에 출두한 김 회장에게 'virtue'는 비용효율화와 수익극대화(손실최소화)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홈플러스 사태는 왜 이렇게 악화됐을까. 많은 이들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김병주 식(式) 경영철학을 그 원인으로 꼽힌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군살을 제거해야 하고, 철저한 '비용 효율화'로 이를 추구하는 게 MBK와 김 회장의 그간 경영방식이다. 하지만 오로지 '숫자'만 보는 경영은 큰 폐해를 낳았고 그 집약본이 홈플러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병주가 강조한 '아시아적 가치'는?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대규모 인수 후 재무구조 재편과 효율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뒤 매각하는 바이아웃 전략로 MBK를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성장시켰다. '바이아웃'은 글로벌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기법이다. 김 회장은 1986년 골드만삭스 입사를 시작으로 글로벌 세계적 투자회사 칼라일그룹 아시아 대표 등을 거치면서 이 기법을 제대로 체득했다.
바이아웃의 핵심은 '비용 효율화'다. 김 회장 스스로도 이를 명확히 밝힌 적이 있다. 지난해 4월 국내에 출간된 책「부의 완성」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PEF의 핵심 임무로 '가치 창출'을 강조하며, 그 수단으로 비용 절감과 경영 통제권 확보를 강조했다.
하지만 '바이아웃'은 한국 사회에서 거부감이 강하다. 이 때문일까. 김 회장은 과거부터 '아시아적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해왔다. 그 일환으로 비용 효율화를 위해 해고 대신 임금삭감이라는 방법을 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구식 자본주의의 첨단무기인 'PEF'에 '아시아적 정서'를 추가한 것, 이것이 김 회장이 강조해왔던 MBK 경영방식이다.
MBK 경영의 핵심은 오로지 '숫자'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김 회장과 MBK는 냉정한 숫자 중심 경영 행태를 줄곧 보여왔다.
홈플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MBK는 2015년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에서 홈플러스를 매입할 당시 아시아 인수합병 최대 규모인 7조2000억원에 지분을 사들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국내 M&A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다. 그러나 MBK가 이 돈을 투입한 건 아니다. 실제로는 인수금액 중 상당부분을 홈플러스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하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전략을 사용했다.
인수 이후 MBK는 홈플러스의 건물·토지·영업기구 등 유형자산과 투자부동산을 대규모로 매각하고 점포를 임대하는 '세일앤리스백' 전략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MBK가 이러한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은 약 4조원이 넘는다. 김 회장은 2022년 언론 인터뷰에서 “경쟁력 강화를 통해 가치를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단기적인 투자금 회수 중심 전략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익만 있을 뿐 책임은 없다?2024년 홍콩 투자은행 전문 매체인 아시안 벤처캐피털 저널(AVCJ)과의 인터뷰에서도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컨티뉴에이션 펀드나 세컨더리 투자를 통한 장기 보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GP 주도의 세컨더리 투자에 대해 "깔끔한 매각을 선호한다"며 선을 그었다.
세컨더리는 기존 펀드 자산을 새 펀드로 넘겨 운용을 연장하는 방식이지만 김 회장은 이를 ‘정리를 미루는 구조’로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MBK가 주로 사용해온 바이아웃 전략을 고려할 때 경영권 인수 이후 구조조정과 효율 개선을 통해 가치를 높이고, 적절한 시점에 매각하는 전통적 바이아웃 사이클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한 번에 매듭짓는 것이 장기간 불확실성을 끌고 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책임 경영에 대한 인식의 부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의 경영 전략은 오랫동안 자본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써내려왔으나 이제는 '책임 경영의 부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며 "경영 통제권과 아시아적 정서를 강조했지만 홈플러스 사태에선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실에서 이뤄진 의사결정...소통도 부재MBK의 의사결정에 대한 지적도 많다. MBK파트너스는 '유한회사' 구조다. 경영방식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투자 및 심의 과정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 MBK파트너스 서울사무소에는 김 회장을 포함해 14명의 파트너가 있다. MBK 측은 "김병주 회장은 MBK 파트너스의 수장으로서 투자 판단과 투자 관련 회의, 결정에는 관여한다"고만 설명할 뿐 이를 입증할 자료나 정보는 없다. 그렇다보니 "홈플러스 경영에 김 회장과 MBK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통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투자자 연례 서한에서는 홈플러스 사태를 '언론의 약간의 소음'이라고 표현해 비판을 받았다. 또 국회 출석 요구에도 계속해서 불응하다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MBK는 대기업이 아니며,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진행된 사안”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일부 부인했다.
아주경제=류소현 기자 sohyun@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