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대한민국 하늘길을 책임지는 두 공기업,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와 한국공항공사(KAC)가 나란히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겉으로는 상생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외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법과 규정’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파트너사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 인국공, 매출 바닥인데 ‘여객 수’대로 돈 내라?…면세점 옥죄는 ‘계약의 덫’
인천공항 면세점 구역은 최근 공기업판 ‘불공정 계약’의 전장이 됐다. 인국공이 매출 감소로 허덕이는 면세점 업계에 기계적인 법 적용을 앞세워 막대한 위약금과 임대료를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가장 큰 뇌관은 기형적인 임대료 산정 방식이다. 인국공은 매출이 아닌 ‘여객 수’에 연동해 임대료를 책정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엔데믹 이후 공항 이용객은 늘었지만, 고환율과 경기 침체로 실제 지갑을 여는 여행객은 줄어든 ‘빛 좋은 개살구’ 상황임에도, 공사는 “사람이 늘었으니 돈을 더 내라”고 압박하는 꼴이다.
여기에 ‘위약금 폭탄’ 논란까지 불을 지폈다. 경영 악화를 견디다 못한 사업자가 계약 해지를 요청하려 해도, 공사 측이 통상적인 업계 수준의 10배에 달하는 과도한 위약금 조항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라, 신세계 등 대기업마저 사업권 반납을 고려할 정도로 현장의 출혈은 심각하지만, 인국공은 “계약은 쌍방 합의하에 체결된 법적 약속”이라며 요지부동이다. 국가 계약법상 임의 감면은 배임 소지가 있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할 뿐이다.
◇ KAC의 월세 독촉, ‘배임 방지’인가 ‘책임 전가’인가
‘갑질’ 논란은 김포공항에서도 진행 중이다. 한국공항공사(KAC)가 운영하는 김포국제공항 문화체육센터 내 실내 골프연습장은 운영사 선정 실패로 5회나 유찰되며 내부 영업 시설물이 모두 철거되는 등 사실상 폐허가 됐지만, 공사는 입점 소상공인에게 임대료 납부를 요구해 빈축을 사고 있다.
센터 내에서 피팅숍 등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모체인 연습장과 수영장 등이 문을 닫아 발길이 끊긴 상황에서 월 수백만 원의 임대료를 내라는 건 사실상의 폐업 강요라고 호소한다. 공사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운영 공백으로 건물이 ‘유령 시설’이 되었는데, 그 피해를 왜 애꿎은 소상공인이 뒤집어써야 하느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KAC 측은 안타깝지만 규정을 어길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운영사 선정 문제와 별개로 개별 입점 업체와의 계약 기간은 남아있기 때문에 임대료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법적 근거 없이 임의로 임대료를 감면해 줄 경우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점주들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공사는 최대한 빠르게 새 운영사를 선정해 영업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텅 빈 건물에서 당장 생존의 기로에 선 소상공인들에게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 ‘법대로’ 뒤에 숨은 괴물…ESG는 보고서용인가
두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행정 편의주의’다. 인국공은 ‘국가 계약법’을, KAC는 ‘배임 방지’를 방패 삼아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법적으로는 공사의 논리가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책무는 기계적인 법 집행을 넘어, 국민과 상생하는 해법을 찾는 데 있다.
두 공사 모두 매년 경영 평가 때마다 ‘ESG 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하지만 화려한 보고서 이면에 감춰진 민낯은, 이익과 규정 앞에서는 파트너사의 눈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차가운 괴물이나 다름없다.
위약금 폭탄을 맞은 면세점, 텅 빈 골프연습장에서 월세 독촉을 받는 점주들. 이들에게 대한민국 공항은 ‘세계 1등’의 자부심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갑’일 뿐이다.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사람이 보이는 유연한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