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부부가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레미안원펜타스 청약 당시 결혼한 장남을 부양가족에 넣어 청약점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장남의 ‘위장 미혼’ 꼼수 의혹이 사실일 경우 국토교통부가 공급 질서 교란을 막기 위해 실시하는 주택 부정청약 조사에서도 적발하기 힘든 유형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해 레미안원펜타스에 대한 부정청약 실태를 조사해 40건을 적발한 국토부는 이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전후로 필요할 경우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 조사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2024년 하반기 수도권 주요 분양단지 등 40곳(약 2만6000 가구)에 대한 주택청약 및 공급실태’를 점검해 총 390건의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적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적발된 주택 공급질서 교란 행위의 사례는 △직계 존속 위장전입 243건 △청약자 위장전입 141건 △위장결혼 및 이혼 2건 △위조 및 자격조작 2건 △불법전매 2건 등이다. 주택법 위반으로 최종 확정되면 청약 당사자에겐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과 함께 계약취소(주택환수) 및 10년간 청약제한 조치가 취해진다. 해당 점검 결과와 관련해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래미안원펜타스 청약 가점 만점(84점)을 받은 청약통장 4건 중 1건은 위장전입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부정청약 만점 당첨자는 장인과 장모를 위장전입해 부양가족 점수를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점수는 74점으로 래미안원펜타스 청약 당첨자 평균 가점 76.54점보다 낮았다.
청약 가점 만점을 받으려면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 본인 제외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 이어야 한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래미안원펜타스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원에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한 단지로, 지하 4층~지상 최고 35층, 6개동, 총 641가구 중 전용면적 59~191㎡ 292가구를 일반분양했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6736만원으로 전용면적 84㎡ 분양가가 20억원이 넘었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대표적인 로또 청약 단지로 꼽혔다. 이에 2024년 7월 1순위 청약 당시 178가구 모집에 9만3864명이 신청하며 평균 청약 경쟁률 527.3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청약 경쟁이 과열되자 국토부는 래미안원펜타스 등 고가점자가 몰린 인기 청약단지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래미안원펜타스 40건을 비롯해 부정행위로 ‘가점제 청약’에 당첨된 사례 180건을 적발했다. 이 중 청약점수 70점을 넘긴 부정 당첨자 151건이 모두 위장전입으로 파악됐다.
이 후보자의 레이안원펜타스 청약 과정을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토부가 적발한 부정행위 유형들에 포함되지 않을 만큼 매우 드문 사례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한국부동산원 등으로부터 확보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 후보자 남편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2024년 7월 래미안원펜타스 137(㎡)A형에 청약을 넣어 일반공급 유형으로 당첨됐다. 해당 주택형은 일반공급이 8세대였고, 이 후보자 남편이 당첨된 1순위 가점제로는 7세대를 뽑았다. 최저가점이 74점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무주택 기간과 청약저축 가입기간 모두 만점이면 부양가족이 4명(25점)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당시 김 교수의 부양가족이 4명이 되려면 이 후보자와 세 아들이 모두 부양가족에 들어가야 했는데, 청약 공고가 나오기 7개월 전인 2023년 12월 이 후보자의 장남이 결혼식을 올리고 용산구에 신혼집(전세)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정청약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의 장남은 청약 신청 마감 후 용산 집으로 주소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청약 가점을 높이기 위해 결혼한 아들을 부모 주소지 세대원으로 계속 유지한 것 아니냐고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이 후보자 남편은 청약에 당첨된 뒤 36억여원을 지불했고, 해당 아파트의 시세는 최소 2배 이상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 안팎에선 “이 후보자 부부의 청약 당시 장남이 혼인·전입 신고도 안 돼 있었으면 계속 부모 집에서 함께 산 것으로 간주돼 부정청약 실태 점검 과정에서 걸러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 후보자 논란처럼) 이미 조사를 한 청약 단지에서 새로운 부정청약 의혹이 불거진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면서도 “(부동산 정책 신뢰와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국회 요청 등이 오면)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9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결혼한 아들을 부양가족 수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고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의혹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서울 서초구 해당 아파트 앞에서 하고 있다. 개혁신당 제공 이날 반포 래미안원펜타스를 찾은 천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이혜훈 후보자는 집 없는 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가족의 입주 기회를 부정청약을 통해 위법하게 빼앗았다. 위선과 내로남불, 반칙의 끝판왕 이 후보자는 장관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 뒤, “이재명정부는 이 후보자 지명 철회는 물론 청약 당첨 취소에 더해 당장 형사입건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2021년에 ‘집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집주인한테 전화가 오면 밥이 안 넘어가더라’라고 했다”며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면서 “2024년 8월 후보자의 배우자가 당첨된 137A형, 즉 41평형은 당시 공급가액만 36억 원이었고, 현재 가치는 80억~90억 원대로 추정된다. 이 후보자는 국민들께 씻을 수 없는 박탈감과 분노를 안겼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연합뉴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이 후보자의 서초구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과 관련, “후보자도, 대통령실도 이 점만큼은 아주 심각하게 봐야 된다”며 “진보층만이 아니라 통상적인 보수층도 용인하기 어려운 하자”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이날 유튜브 채널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 인터뷰에서 “이혜훈 후보자가 아파트 청약을 허위로 해서 거액의 차액이 발생했지 않나. 진보 인사건 보수 인사건 간에 (공직)후보자 기본 자격 기준이 있는데 (이 의혹은) 거기에 크게 위배되는 사건”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중도 보수 인사를 재경부(기획예산처) 장관에 임명하는 것을 찬성한다. 그런데 이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다른 문제”라며 “(이 후보자가) 점점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부서(기획예산처)를 맡을 후보자가 여러 명 있는데, 이분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뒤 “이 후보자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고 인사청문회 전 자진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후보자 측은 전날 CBS노컷뉴스에 “(장남이) 혼인 신고와 (신혼집) 전입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성년인 자녀의 결정 사항에 개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수부 검사 출신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로또 아파트 청약 과정에서 결혼해 분가한 장남을 부양가족으로 거짓 기재했다”고 주장하며 “해명도 허위다. 결혼한 장남은 이혜훈과 살고, 며느리는 용산에 따로 살았다는 거짓말을 믿으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주택법 제65조에 따라 국토부 장관 또는 사업 주체는 부정 청약이 밝혀지면 주택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며 “이제 (이 후보자가) 낙마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수감될 사건”이라고도 했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전반 관련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를 둘러싼 갑질·부정청약 의혹 등과 관련해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이런 정도 수준을 가지고 기다려야 되는가’라는 국민의 질책도 충분히 이해된다”면서도, 사견을 전제로 “국민적 눈높이에서 보면 이해 안 가는 일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까지도 차분하게 제도를 통해 검증하고 청문회에서 결론 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인사권자(이재명 대통령)께서도 그런 (청문회) 전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판단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시스템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19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 후보자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47%로 ‘적합하다’(16%)보다 3배나 높은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이 후보자 적합도를 물은 결과다. 응답자 37%는 의견을 유보했다.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접촉률은 46.5%, 응답률은 11.6%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