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엔 ‘에밀리’, 서울엔 ‘케데헌’…세계 홀린 흥행 열쇠 는 ‘로컬 판타지’ [SS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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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엔 ‘에밀리’, 서울엔 ‘케데헌’…세계 홀린 흥행 열쇠 는 ‘로컬 판타지’ [SS기획]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사진 | 넷플릭스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이게 말이 돼?”라고 욕을 하면서도 손가락은 어느새 ‘다음 화 재생’을 누르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이야기다.

평론가들의 혹평과 프랑스 현지의 비아냥 속에서도 이 드라마의 생명력은 질기다 못해 강력하다. 지난 연말 공개된 시즌 5는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또다시 전 세계 넷플릭스 1위(글로벌 톱10 TV 부문)를 탈환했다. 무대는 파리를 넘어 로마까지 확장됐고 패션은 더욱 난해해졌지만, 대중은 여전히 에밀리의 ‘우당탕탕’ 유럽 생존기에 열광한다. 왜일까.

◇ ‘뇌 빼고 보는’ 비주얼 판타지의 힘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사진 |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성공 요인은 명확하다. 복잡한 서사나 심오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 철저한 ‘도피성 엔터테인먼트(Escapism)’라는 점이다.

팬데믹 시절, 여행길이 막힌 시청자들에게 파리의 낭만을 대리 충족시켜줬던 이 시리즈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됐다.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셰프 가브리엘(루카스 브라보 분), 젠틀한 영국인 알피(루시엔 라비스카운트 분)와의 삼각관계는 뻔한 클리셰지만, 파리의 풍광과 어우러져 거부할 수 없는 ‘비주얼 판타지’를 제공한다.

개연성이 부족한 서사는 화려한 볼거리로 메운다. 에밀리(릴리 콜린스 분)의 총천연색 패션은 시각적 자극을 주고, 매 회 터지는 위기는 인스타그램 포스팅 한 번으로 해결되는 ‘사이다’ 전개를 보여준다. 스트레스는 없고 도파민만 남는 구조다. 이는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숏폼’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 ‘에밀리 효과’, 파리 찍고 로마로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사진 | 넷플릭스
이 드라마를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 치부하기엔 경제적 파급력이 상당하다. 일명 ‘에밀리 효과(The Emily Effect)’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 조사에 따르면 파리 관광객의 약 38%가 “드라마를 보고 방문을 결심했다”고 답했다.

극 중 배경이 된 빵집과 레스토랑은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그랑 팔레, 카페 드 플로르, 호텔 플라자 아테네, 놀이공원, 박물관, 카페 드 롬므, 라 메종 로즈,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 심지어 친구 카미유 가족의 와이너리까지도 모두 실제 존재하는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넷플릭스는 이 영리한 ‘관광 경제’의 판을 파리에서 멈추지 않고 확장했다. 시즌 5에서 에밀리는 파리에서의 복잡한 관계를 뒤로하고 이탈리아 로마에 완전히 정착했다. 새로운 연인 마르첼로와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은 21세기판 ‘로마의 휴일’을 완성하며, 파리에 이어 로마까지 ‘에밀리 관광 특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 파리엔 에펠탑, 서울엔 남산타워…‘케데헌’이 보여준 로컬 판타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 |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성공 방정식은 K-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시사점을 준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K-콘텐츠들의 공통점 역시 ‘할리우드 흉내’가 아닌 지극히 한국적인 색채를 ‘매력적인 판타지’로 치환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글로벌 히트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대표적인 예다. K팝 아이돌이 무대 뒤에서 악귀를 사냥한다는 이 작품은 배경을 뉴욕이나 도쿄가 아닌 ‘서울’로 설정해 시각적 차별화를 꾀했다. 공개된 비주얼 속 N서울타워(남산타워)의 실루엣과 울긋불긋한 한국의 도깨비 문양, 전통 의상은 전 세계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힙(Hip)’한 미장센으로 소비된다. 에밀리의 에펠탑이 낭만이라면, 케데헌의 남산타워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의 상징이 된 셈이다.

‘오징어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한국적인 골목 놀이와 초록색 트레이닝복, 복도식 아파트를 내세워 전 세계에 ‘다크 판타지’를 각인시켰다. 결국 글로벌 히트작의 공통 분모는 ‘로컬의 힘’이다. 해당 도시와 문화만이 가진 고유성(Originality)을 세련된 비주얼 스토리텔링으로 포장할 때 전 세계가 반응한다는 것을 ‘에밀리’와 ‘케데헌’이 동시에 증명하고 있다.

◇ 진짜 주인공은 ‘실비’…로마·베네치아로 판 키운 시즌5, 또 통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에밀리 상사 ‘실비 그라토’(필립핀 르루아-볼리외 분). 사진 | 넷플릭스
한편, 드라마의 인기가 거듭될수록 진짜 주인공은 에밀리가 아니라 상사 ‘실비 그라토’(필립핀 르루아-볼리외 분)라는 평가도 힘을 얻는다. 일과 사랑 모두에서 주체적인 60대 여성의 관록과 우아한 ‘프렌치 시크’는 에밀리의 철없는 행동과 대비되며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실비는 단순한 조연을 넘어, 전 세계 중년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넷플릭스는 시즌 4의 성공에 힘입어 발 빠르게 시즌 5를 내놓았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시즌 5는 파리를 넘어 로마와 베네치아로 무대를 확장하며 볼거리를 더했다. 에밀리의 새로운 ‘로마 휴일’은 공개 직후부터 글로벌 1위를 석권하며 여전한 화제성을 입증했다.

욕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이 매력적인 ‘길티 플레저’의 유효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로마에 둥지를 튼 에밀리의 발걸음 따라 또다시 새로운 경제 효과가 창출되는 지금, 한국의 콘텐츠 역시 우리만의 명소와 문화를 어떻게 ‘글로벌 판타지’로 포장할지 더욱 과감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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