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한방 난임치료에 국가지원(건강보험)이 있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의사 출신인 정 장관이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에 대해 건보를 적용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에 한의계에서는 “한의약 난임치료는 검증이 완료된 치료”라며 즉각 반발했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에서도 “한방 난임치료는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엑스레이(X레이) 등 의료기기 사용권을 놓고 갈등을 이어왔던 의사와 한의사가 이번엔 ‘한방 난임치료’ 문제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정 장관과 의협,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함께하는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제안도 나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10일 한의계에 따르면 난임 부부들은 인공수정 등 난임치료에서 효과를 못 본 경우 한약·침·뜸 같은 한방 치료를 받기도 한다. 서울 등 지자체에서는 일부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물론 건강보험 대상도 아니다. 현재 한의약 난임치료는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와 72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조례에 근거한 지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한의계 “이미 검증 완료…한의학 폄훼 분노”
한의계는 정 장관의 ‘과학적으로 입증이 쉽지 않다’는 발언에 관해 “양의사 특유의 무지성적 한의학 폄훼 발언이다”며 “한방 난임치료는 복지부가 발표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 따라 시행되는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복지부 지침에도 난소 기능이 떨어진 여성에게 한약 치료를,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을 받은 여성에게 침·한약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적시됐다.
복지부는 최근 발표한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에서도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다만 한방 난임치료에 관해 건보 급여라는 ‘공적 재원’을 투입할지는 이를 판단할 표준화된 과학적 근거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한의협은 “이미 복지부가 발표한 ‘여성 난임 표준임상진료지침’이 존재하고, 한의 난임사업 역시 다년간 지자체 단위에서 시행되며 충분한 객관적 자료와 임상 성과가 축적돼 있다. 국내외 유수 학술·임상 논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난임 부부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맹목적으로 한의약 폄훼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양의계의 한심한 작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 앞에서 정부는 특정 직역의 주장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학술적·임상적 성과가 확인된 한의약 난임사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과학적 근거?검증 없다”
의사 단체는 정 장관의 발언에 동의하며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성에 의구심을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의협은 최근 “과학적 근거와 검증 없이 추진되고 있는 한방 난임치료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한방 난임 지원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직역 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토론회 등이 열릴지 주목된다.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은 앞서 한의사의 X레이 및 레이저?고주파 등 의료기기 사용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미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한방 난임치료 논쟁으로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한의협은 최근 “복지부 장관과 대한한의사협회장, 대한의사협회장 3인이 참여하는 한·양방 난임치료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한의협은 “정부 주관으로 한의약 난임치료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공론장이 마련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난임치료 지원 정책의 책임자인 정은경 복지부 장관의 참여”라고 강조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뉴시스 ◆난상 토론까지 이어질까 다만 의협은 한방 난임치료는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라며 한의협의 ‘3자 토론’ 제안에 관해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의협은 9일 입장문을 통해 “논의를 정치적 대립 구도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다툴 사안이 아니라, 객관적 연구와 임상 근거로 검증되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의협은 이어 “난임치료의 효과 검증은 ‘회장 토론’이 아니라 ‘전문가 검증’의 영역이다. 의학적 효과와 안전성은 각 단체장만의 토론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없다. 난임치료의 효과 여부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국제 가이드라인 검토, 치료 성과와 부작용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논쟁에 복지부가 한의약 난임치료의 효과성 연구와 검증에 나설지 주목된다. 우선 복지부는 지자체들이 펼치는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 사업의 성과 등을 살필 계획이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