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그간 경색된 분위기를 털어내고 ‘해빙’ 모드로의 전환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경제 협력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 서해 구조물 문제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관해서도 양측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성과로 꼽힌다. 다만 중·일 갈등 상황 속에서 중국이 우리나라에 입장 표명을 거듭 요구하며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다시금 시험대 위에 올랐다는 관측도 나온다.
6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함께 하고 14건의 업무협약(MOU) 서명식에 참석하며 한·중 관계의 전면적 복원 의지를 명확히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방중의 성과로 “동북아에서 정상외교를 통한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토대를 확고히 했다”는 점을 꼽으며 “이 대통령은 취임 7개월 만에 미·중·일 3국 정상과의 상호 방문 외교를 완료하고 한·중 간의 전면적 관계 복원의 흐름을 공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악수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회의장 격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중국의 ‘2인자’인 리창 국무원 총리와 만나 회담과 오찬을 함께 했다. 베이징=뉴스1 ◆경제 협력 강화… 서해 문제·한한령 등 공감대 이 대통령은 이번 방중을 통해 양국 간 우호적인 정서를 증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중 관계 전면 복원에 맞게 매년 만남을 이어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외교·안보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전략적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했다.
한·중 간 경제 협력의 동력도 확보됐다. 양국 기업 간에 32건의 MOU가 체결되는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기반이 마련됐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해 “경제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의 초석을 다졌다”며 “이번 방중을 계기로 실질적인 협력 확대를 위해 양국은 제조업뿐 아니라 식품·패션·관광·엔터테인먼트·게임 등 소비재 서비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이해를 넓히고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을 이유로 중국이 시행한 한한령도 해제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양국은 바둑·축구 등 상호 간에 민감성이 덜한 분야에서의 교류 증진부터 시작해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 분야에서도 실무 부서 간 협의하에 진전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 다른 민감한 현안인 서해구조물 문제에 관해서는 위 실장은 “진전을 기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승인을 받은 핵추진잠수함(핵잠)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 측에 우리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실장은 “핵잠 도입 추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며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북한 문제에 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 수행 의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인식을 재확인하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양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인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공식환영식 후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제공 ◆習 “역사의 올바른 편 서라” 실용외교 험로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실용외교 구현에는 험로가 예상된다. 시 주석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일본을 향해 날을 세우고 우리에게 중국 편에 설 것을 요구하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중·일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은 한층 복잡해졌다.
중국 방문 후 당장 이달 중순쯤 일본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대통령이 중·일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건이다. 당초 이 대통령이 잇단 중·일 방문으로 중재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중재 역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 등에서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과 이 대통령의 방중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이번 방중 일정에서 한·중이 공유하는 항일운동 역사가 부각된 데 대해 일본 측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