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일부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시장에 내다 팔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런 행태는 최근 정치권의 자사주 관련 규제 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더욱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이나 우호 지분 확보 등에 활용해 온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전에 자사주를 선제적으로 정리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주 환원이라는 자사주 취득 본연의 목적 대신 기업의 자금 창구로 활용하면서 정부의 밸류업 기조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의 자사주 처분 규모는 874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874억원) 대비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된 하반기 처분액이 상반기보다 크게 늘었다. 자사주를 소각해 주당 가치를 높이기보다 법 시행 전 매각을 통해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상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현금 유입 없이 자본이 감소하는 구조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소각 대신 매각을 선택할 유인이 크다는 점에서 최근 자사주 처분 급증은 상장사들의 재무 부담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차전지 소재 기업 금양이 꼽힌다. 금양은 현재 대규모 자금 조달과 투자 집행 과정에서 유동성 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405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납입일을 올해 2월 15일로 다시 연기했는데, 이번이 다섯 번째 정정이다.
투자 일정에서도 자금 사정은 그대로 드러난다. 금양은 지난해 12월 29일 콩고 리튬 광산 탐사 관련 자본금 잔액 약 605만달러의 납입 기한을 오는 3월 31일로 미뤘다. 회사는 공시를 통해 자금 상황을 고려해 탐사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상대방과 분할 납입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양의 소액주주들은 "회사가 스스로 현금 부족을 인정하면서도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당 가치 관리보다는 증자와 자사주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편 198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보유한 씨젠 역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주주들은 주가 부양을 위한 대규모 소각을 요구해왔지만 씨젠은 여전히 자사주를 소량씩 처분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씨젠은 지난해 11월 14일 보유 중인 자사주 1334주를 소각이 아닌 장외 처분 방식으로 매각했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 아니라 임직원 보상이나 우군 확보를 위한 회사 쌈짓돈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씨젠의 한 소액주주는 "법 시행 전 자사주를 소각 외 용도로 소진하려는 꼼수를 멈추고 전량 소각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각은 단기적으로는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주주 신뢰를 훼손할 경우 장기적인 기업 가치에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밸류업과 대척점에서 실리를 챙기는 행보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은 냉혹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주경제=양보연 기자 byeony@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