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힘이 법을 대체한 순간…대한민국은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

글자 크기
[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힘이 법을 대체한 순간…대한민국은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
미국이 군사작전으로 베네수엘라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압송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이양 전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run)’하겠다고 선언했다. 명분은 마약 범죄 기소였고, 수단은 압도적 군사력이었다. 이 장면은 한 국가의 독재 종식 여부를 넘어, 국제질서가 어디까지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마두로 개인의 불법성에 있지 않다.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주권 존중과 국제법이라는 최소한의 규칙이, 결과를 앞세운 힘의 논리에 의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데 있다. 명분이 옳더라도 수단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이 무너질 때, 그 비용은 언제나 힘이 약한 국가부터 치르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남긴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한다’는 문장은 지금의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냉혹한 경구처럼 다시 소환되고 있다.
 
더 주목할 대목은 정권 교체와 동시에 제시된 ‘과도 통치’와 ‘자원 재건’ 구상이다. 미국은 석유 인프라 복구, 자국 기업 진출, 미군 보호를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했다. 이는 민주주의 지원이라는 언어보다는 정치·군사·경제를 결합한 관리 통치 모델에 가깝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안보 안정→재건→시장 개방’이라는 경로가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떠올리면, 이번 구상이 결코 낯설지 않다. 21세기에도 강대국은 필요하다면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사건이 한국에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한반도는 여전히 강대국 질서의 교차로에 있다. 국제 규범이 약화될수록, 작은 나라의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계산과 준비에 의해 좌우된다. 북핵 문제, 미·중 전략 경쟁, 대만해협 긴장까지 겹친 현실에서 “설마 여기까지 오겠느냐”는 낙관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니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나라를 지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형세”라는 말은, 오늘의 국제환경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응은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할까. 외교에서는 주권 존중과 국제법이라는 기준을 분명히 견지하되, 감정적 진영화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동맹은 충성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과 관리의 대상이다. 한미동맹 역시 공개적 충돌이 아니라 전략적 소통과 내부 조정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전례를 기준으로 한 점검이 요구된다. 사법적 명분과 군사력이 결합된 개입 방식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시나리오 점검과 연합 운용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 ‘설명 가능한 억지력’과 ‘관리 가능한 확전 방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원칙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경제와 국민 보호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금융시장의 변동성 관리, 교민 안전 대책, 해외 진출 기업의 계약·자산 리스크 점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 책무다. 전쟁과 제재, 통치와 재건이 한 패키지로 움직이는 시대에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사고하는 접근 자체가 위험하다.
 
힘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해서 원칙을 버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원칙은 지킬 준비가 있을 때만 힘을 가진다. 로마의 격언처럼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은 군사주의의 찬가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인식의 표현이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가 대한민국에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국제질서가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 답은 구호가 아니라 준비에 있다. 그래픽노트북LM[그래픽=노트북LM]
 
아주경제=아주경제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