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택시장이 다시 얼어붙고 있다. 가격이 급등해서도, 수요가 폭발해서도 아니다. 시장을 움직일 매물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은 ‘공급·매물 절벽’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적으로 공급 일정의 가시화와 거래 정상화를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매물 절벽’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임차인이 거주중인 주택은 사실상 거래가 막혔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이상 매수 자체가 어려워졌고, 그 결과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급격히 줄었다. 향후 공급 감소 전망까지 겹치며 시장은 구조적으로 경직된 상태다. ◆입주 물량 ‘반토막’…공급 불안, 예고된 현실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새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6412가구로, 지난해보다 약 48% 감소할 전망이다.
서초구(5155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의 입주 물량은 2000가구 안팎이거나 그보다 적다. 강남권과 일부 신축 밀집 지역을 제외하면 체감 공급은 더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평가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문제는 지금의 공급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재개발·재건축 지연으로 착공과 입주 공백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공급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서울 집값을 떠받치는 힘은 수요가 아니다. ‘거래 가능한 매물’이 극도로 제한된 구조다.
임차인이 없는 집,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소수의 매물만 시장에 나오다 보니 거래량은 줄어도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지금은 수요가 몰려 오르는 장이 아닌 매물이 잠기면서 가격이 버티는 국면”이라며 “신고가 1건이 기준점이 돼 남아 있는 매물 호가를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왜곡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68㎡은 지난달 77억원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전 최고가인 지난해 12월 67억원 대비 1년만에 무려 10억원이나 상승한 것이다.
서울 강남권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가격 협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안 팔아도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매물 하나를 두고 여러 수요자가 동시에 움직이는 단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거래 줄었는데 가격은 왜 안 떨어질까?…가장 힘든 사람은 ‘무주택’ 실수요자
이 같은 시장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가장 가혹하다. 가격이 급락하던 시기처럼 기다릴 명분도 없고, 상승장처럼 과감히 매수에 나설 확신도 없다.
전세를 연장하자니 집값이 더 오를까 불안하고, 당장 매수하자니 자금 부담이 여전히 크다.
주택시장 한 전문가는 “지금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시장”이라며 “실수요자들은 지금도 비싸지만 더 오를까 봐 무섭다는 심리에 갇혀 있다. 이 불안감 자체가 가격 하방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서울 집값을 움직이는 건 수요가 아닌 ‘사라진 매물’이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투기 억제에는 효과가 있지만, 정상적인 매물 순환까지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차인 있는 주택 거래를 막으면서 실수요자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도시정책 분야 한 전문가는 “규제만 있고 공급 로드맵이 불분명하면 시장은 더 경직될 수밖에 없다”며 “거래 규제와 공급 대책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집값 움직이는 건 수요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지역·상품별 양극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모든 지역이 오르는 장은 아니지만, 선호 지역과 신축·준신축으로 수요가 쏠리는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실거주 목적이라면 과도한 시장 타이밍 집착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공급 일정의 가시화와 거래 정상화를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매물 절벽’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금 서울 집값을 움직이는 건 수요가 아닌 ‘사라진 매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