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은 출판계는 경기침체,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의 범람, 독서 인구 감소라는 위기에서도 여전히 ‘책의 힘’을 믿고 다양한 장르의 책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동서양 역사의 거인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를 얻는 전기(傳記), 미국과 중국 갈등 속 불안정한 국제정세에서 길을 제시하는 인문과학서, 고단한 일상의 위로와 공감을 주는 잔잔한 에세이가 앞다퉈 서점에 진열된다. 독자에게 얕은 정보보다는 깊은 사유를 주는 새해 주요 출판사의 기대작을 살펴봤다.
◆거장의 삶 통해 깨닫는 지혜 아르테 출판사는 상반기에 뉴욕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천젠이 중국 현대사의 혁명가이자 외교가인 저우언라이 5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파헤친 ‘저우언라이’를 내놓을 예정이다. 저우언라이는 중국 공산당을 이끈 마오쩌둥 뒤에서 실무를 조율한 인물. 한나라를 창업한 고조 유방 곁에 소하가 늘 있었듯, 마오쩌둥 곁엔 저우언라이가 있었다. 권력의 속성은 승자 독식이지만, 그는 패배했을 때도 패배자로 남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실각했을 때조차 저우언라이는 권력의 핵심부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영원한 총리’, ‘영원한 이인자’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올해는 겸재 정선이 태어난 지 350주년이 되는 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이를 기념해 책 ‘겸재 정선’(창비)을 선보인다. 유 관장은 대표작 ‘화인열전’ 개정판을 출간하는데 그 첫 번째 책이다.
출판사 돌베개가 2016년 작고한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10주기를 맞아 ‘신영복 전집’을 낸다. 1권 ‘감옥으로부터 사색’부터 11권 ‘봉건제 사회의 해체에 관한 고찰’까지 모두 11권으로 대작이다. 돌베개는 8월에는 ‘백범 김구 연보’를 출간할 예정이다. 백범 권위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백범이 남긴 모든 글과 사진을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사실을 고증했다.
◆위기의 시대, 진단하는 사회과학도서 봇물
웅진출판은 2월에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 중인 미·중 관계를 조명한 ‘돌진: 공학 국가 중국, 로펌 국가 미국’을 내놓는다. 댄 왕 스탠퍼드대 후버 역사연구소연구원은 중국을 과감하고 때론 무모하게 돌진하며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공학 국가’로, 미국을 적법한 절차와 규제에 집착해 모든 것을 가로막는 ‘로펌 국가’로 규정한다. 저자는 이 같은 틀을 통해 양국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파헤친다. 출판사 글항아리는 1월 중에 스티븐 플랫의 ‘천국의 가을’을 내놓는다. 근대 중국 역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19세기 말 태평천국 운동에 대한 기존 관점을 완전히 뒤집으며 이것을 내전이자 국제정세를 바꾼 중요한 사건으로 다룬다. 태평천국 운동은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기에 두 가지 내전을 동시에 다루는 저자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두 내전에 관여했던 영국의 음모가 어떻게 중국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는지 보여준다.
21세기북스가 4월에 내놓는 ‘폭풍이 다가온다’는 미·중 갈등이 첨예화하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예일대 사학과 교수인 오드 아르네 베스터가 제1차 세계대전 사례를 통해 경제적 불안정, 치솟는 민족주의, 외교적 협상 실패가 어떻게 전쟁을 초래했는지를 분석했다. 아르테가 5월 출간하는 ‘제국의 세계사’는 세계 5000년사를 제국이라는 큰 틀로 묶어낸 역서다. 군사·경제·법·종교를 아우르는 제국 연구의 역작으로 기대된다.
사회평론아카데미는 1월 중에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4권을 발간한다. 2015년 7월16일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사업의 돛을 올린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책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헌법을 파괴하거나 유린한 공직자 312명의 행적을 12권에 걸쳐 기록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여서 주목된다.
◆‘나’를 돌아보고 ‘소확행’을 전하는 에세이 강세
웅진출판은 5월에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를 낸다. ‘딸’의 시선으로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다. 엘리트가 돼 빅테크에 입사한 딸이 같은 건물 청소부로 일하는 엄마의 일상을 관찰했다. 김영사는 올 하반기 중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강용수의 ‘철학자의 행복 상담소’를 선보일 예정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귀환도 잇따른다. 김영사는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위대한 리더십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하반기에 선보인다. 베스트셀러 ‘불안 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2월에 ‘어메이징 제너레이션’(웅진)을 선보이고, 이 밖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트로이목마)의 9번째 책도 1월에 나온다. 2018년부터 8년간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이번 책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여러 색다른 여행지를 시작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태평양의 섬들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재미있는 여행지의 역사와 구경거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올 한 해도 다양한 양서를 읽고 진위를 알 수 없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사유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매체는 단연 ‘책’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