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쇳물 찌꺼기 긁던 손목 통증과 이별" AI와 동행하는 포스코 ‘김부장들’[AI시대, 일자리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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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쇳물 찌꺼기 긁던 손목 통증과 이별" AI와 동행하는 포스코 ‘김부장들’[AI시대, 일자리가 바뀐다]
편집자주제조업을 포함한 산업 현장에서의 인공지능(AI) 활용은 올해 산업계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조현장에 투입된 AI는 생산성 향상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입증했다. 그 범위는 올해 본격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AI발 생산 혁신의 이면에는 일자리 감소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인력 개입 없이 생산이 이뤄지는 소위 '다크팩토리(Dark Factory)' 개념이 점차 현실화하면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경제가 확인한 AI 적용 제조현장에서의 일자리 변화는 복합적이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은 기계가 맡되 판단과 관리, 책임의 역할은 사람이 맡는 방향으로 확실한 영역 구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다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AI시대는 생산성과 기술 경쟁뿐 아니라 일자리 전환이라는 숙제를 안겼다. 아시아경제는 새해 산업현장을 찾아 AI가 몰고 온 일자리 변화를 직접 살폈다.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 '예비처리(KR) 운전실'. 제철소 특유의 굉음과 뜨거운 열기는 온데간데 없고, 마치 IT 기업의 관제센터를 방불케 하는 수십대의 모니터가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4분할로 나뉜 화면 속에서는 거대한 스키머(긁개)가 쇳물 위로 떠오른 찌꺼기인 슬래그를 정교하게 긁어내고 있었다. 과거 숙련공이 용광로의 불길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조이스틱을 움직이던 그 현장이다.


운전실의 메인 콘솔에선 인공지능(AI)이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제어 화면에는 용광로의 전로 번호, 쇳물의 성분, 예비처리 설비의 위치와 동작 상태, 스키머의 이동 궤적 등이 동적으로 표시됐다.


AI 도입으로 어깨·손목 통증 해방

제강 공정의 시작점인 예비처리 공정은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 속 불순물을 걷어내고 품질의 핵심인 황(S) 성분을 조절하는 단계다. '배재' 작업이라고 부른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고온의 쇳물 앞에서 래들(쇳물 그릇)의 기울기를 맞추며 슬래그만 걷어내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신승민 제강부 주임은 AI 도입 이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그 이전까지 한 작업당 400회 이상 조이스틱을 조작해야 했다. 생산량이 많은 날이면 손목과 어깨가 저릿했다.


하지만 지난 5월 3제강공장 모든 예비처리 설비에 AI가 도입되면서 신 주임은 조이스틱이 아닌 공정 전반의 품질 상태를 살필 수 있게 됐다. 그는 "육체적 부담이 줄어드니 설비 관리나 시스템 개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등 더 조업 환경 개선을 위한 새로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감'이 아닌 '지표'로…세계 최초 정량적 '배재율' 도입

이번 혁신의 핵심은 열화상 카메라와 고정밀 각도 데이터를 조합해 활용했다는 점이다. 권오형 제강부 대리는 "고숙련자의 노하우를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슬래그 분포를 카메라로 인식하게 되면서 '배재율'이란 객관적 지표를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숙련공의 '감'에 의존해 슬래그를 걷어내는 '배재작업'에 AI를 적용해 지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제거된 슬래그의 비율과 철(Fe) 손실률을 실시간 데이터로 집계한 것으로, 전통적인 숙련 기반 작업에 정량적 척도를 도입한 첫 사례로 꼽힌다. 이는 강종에 따라 배재율에 차등을 둬 품질을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슬래그 배재 시간도 이전보다 3~5% 수준 단축됐다.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단계인 '래들 기울이기'도 AI가 해결했다. 슬래그를 효과적으로 긁어내려면 래들을 적절히 기울여야 하는데, 자칫 각도가 어긋나면 쇳물이 넘쳐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포스코는 이를 막기 위해 고해상도 카메라와 '중복 판단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AI가 스스로 동작을 멈추는 이중 안전장치다.


사람 밀어내지 않고 지키는 기술

지난해부터 국내 제조업 현장에는 AI 도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AI 자율제조 시스템 구현과 함께 대두된 키워드는 '현장 인력이 설 곳이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포스코는 숙련 인력의 노하우를 AI와 적용해 공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데이터 수집과 학습은 AI가 담당하지만 그 데이터를 만드는 건 현장의 숙련 인력이라는 점을 깨달은 결과다.


현장 직원들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고 변했다.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닌 '자동화 시스템 관리자'로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이어졌다. 작업자들은 개발 단계부터 직접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고숙련자의 노하우가 담긴 시스템 인수인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권 대리는 "작업자들에게 예비처리 자동화 시스템의 구조를 알려주고, 비상상황 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등 자동화 시스템 관리자 역할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며 "개발이 완료된 시점부터는 개발자들과 작업자 사용 매뉴얼을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윤정균 포스코 제강 부장은 "시스템 도입 초기엔 작업자의 섬세한 조업방식을 모두 구현해내지 못해 부족함이 많았으나 정기회의에 현장 작업자들도 참석하면서 작업자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 기술, 예비처리 자동화 등 AI 영역이 넓어지지만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포항=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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